큰딸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갑자기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었었다. 자식이 성장하면 제 짝을 찾아가는 의식을 치르는 것이 당연한 것이건만 마음의 준비가 없었나보다. 모든 것이 걱정이었다. 상견례 날엔 무슨 옷을 입고 나갈지 청첩장은 얼마나 준비하여 누구에게 보낼지로부터 시작된 걱정은 결혼식을 마치고서야 끝이 났다.세상이 변하고 가치관이 바뀌어도 마음은 여전히
갑작스럽게 합창단이 조직되었다. 충주다문화센터에서 주최하는 세계인의 날 행사에서 한글지도 선생님들이 합창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합창할 곡명을 정하고 한 달에 두 번 정기모임 때마다 연습이 시작되었다. 각자의 음역 대에 맞게 파트를 정하고 키 순서대로 자리 배치도 했다.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아니고 축가로 부르는 합창인지라 긴장감 없이 시작했는데, 지휘를
올 들어 가장 따뜻한 봄날이다. 꽃단장을 한 웨딩카가 먼저 반기는 지인의 결혼식에서 혼주와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여기저기 안면이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사심 없이 눈도장을 찍으며 근황을 물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같이 보내면서 가물가물한 기억을 해내느라 정신없이 머리를 굴려야하는 사람들도 만난다. 묵묵히 ‘내 할일
남편의 머리에는 서리가 잔뜩 내려앉았다. 차라리 내 머리에도 흰 머리가 빨리 생겼으면 할 때가 있다. 직장을 다니며 복숭아 재배를 하는 남편에겐 밭이 아내인 가보다. 주말과 평일 이른 새벽에 일하는 날이 많아서일까. 슬그머니 나를 찾는 것은 소금기 맺히고 흙 묻은 작업복뿐이다.농사일이란 1년이 매일 바쁘다. 일이 서툰 나로서는 복숭아일도 힘에 겨운데 남편은
겨울 초입인데 난 벌써 봄을 기다리고 있다. 추위를 무척이나 많이 타는 나에게 남편은 “전생에 아프리카 원시 부족민 공주였나 보다”라고 놀린다.바쁜 출근 시간 자동차 앞 유리에 끼인 성에를 제거한다는 것이 손도 시렵고 몹시도 성가신 일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그동안 직장생활을 할 때는 한결 같이 남편이 일찍 나가 시동을 걸어 줬기
3월 1일자로 전교생이 44명인 초미니학교인 농촌의 소이초등학교로 전근을 왔다. 전에 근무하던 수봉초등학교에서는 전교생이 700여명이라 전교생이름을 10%정도밖에 알지 못했다. 그러나 전교생이 44명에 유치원생까지 합쳐봐야 51명이다. 그래서 요즘 하는 일중 하나가 전교생 이름 외우기이다. 지나간 교직경험이 갑자기 떠오른다. 초임경력 3년째 삼성초등학교에서
자전거를 타보고 싶었다. 예전부터 운동신경이 둔한 터라 엄두를 낼 수 없었는데 배우기로 결심을 했다. 남편이 애써 뒤에서 붙들어 주며 페달을 돌려 보라 했지만 한 바퀴도 못 돌리고 넘어지기 일쑤였다. 다리는 온통 멍투성이가 된 채 가족들에게 핀잔을 들었다.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수없이 반복되어진 후 제법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그때의 기분은
재임기간 동안 방송의 독립성 훼손, 보도의 공정성 약화, 노사관계의 파행이라는 꼬리를 달고 다니며 현 정권의 공영방송 파괴 공작에 앞장서 왔던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이 이번에는 지방 MBC 강제통폐합 카드를 빼들었다.진주-마산 MBC 강제통합 추진에 이어 지난 4일 주주총회를 열고 강릉-삼척, 청주-충주의 강제 통합을 위해 겸임 사장을 임명했다.이번 겸임사장
호수는 얼굴을 덮은 채 말이 없다. 겨울의 눈보라와 칼바람이 빚어 놓은 빙판 한 조각의 위력이 저토록 경이로울 수가 있단 말인가 가슴에 찡하는 울림을 준다.맑은 하늘에 흰 구름 높은 산에는 수묵화 땅 위에는 흰 눈 향기도 없고 화려하지도 않은 무향과 무색의 조화 마치 꿈속을 걷고 있는 듯하다. 나는 곰처럼 옷을 입고 한참 동안 설경에 심취되어 털모자에 고드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었다. 눈도 많이 와서 빙판길은 예사이고 눈으로 인한 사고도 많았다. 그 추운 계절 마음을 녹여주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다. 얼마 전 큰 아이와 다큐멘터리‘울지마 톤즈’를 보았다. 이 태석 신부와 톤즈 마을 사람들을 다룬 이야기이다. 남아프리카 수단은 20년 동안 내전이 지속되다가 지금은 독립을 앞두고 있다.
오래된 냄비 하나가 있다. 친구처럼 삼십년을 지냈으니 친근감이 더 하다. 모양은 비뚤어지고 손잡이가 불에 녹아져 줄어들 만큼 그리 고운 모습은 아니지만 정겹다. 혹 남들이 보게 되면 별것 아니라고 생각 할 것이다. 새것을 두고도 헌 것을 쓰는 이유는 여러모로 편하고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손이 가는 가까이에 두고 날마다 사용하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내 삶
어릴 적에 시골에서 자랐다지만 농사짓는 법이 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뿌리는 농사꾼의 자식 이었나 보다. 결혼 하고서 다시 시골로 이사 온지 10여년이 넘었다. 도시와는 다르게 계절의 변화를 농사를 기준으로 생각 하게 된다. 움츠리고 있던 겨울은 경운기 소리가 비로소 봄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생긴 모양은 다 다르지만 파릇한 모종이 시장에 나올
함박눈이 내린다. 아이들의 기분을 알아차린 선생님은 하던 수업을 접고 완전무장을 시킨다.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맑은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다 학부모님들께 급한 안내장을 보낸다.‘영재유치원 부모님께 하얀 눈이 탐스럽게 내리고 있습니다.손 틈새로 빠져나가는 흰 눈을 잡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면서 내일 아침 등원
아이들이 하루 종일 뒤엉켜 놀고 있다. 마음먹고 청소를 해보았지만 이부자리라도 펴면 세 아들은 더 난리법석이다. 아무리 잔소리해도 남편까지 거들게 되면 아이들 웃음소리에 먼지도 나도 정신이 없다.개구진 아이들의 몸엔 상처자국이 많다. 심장수술을 한 큰 아이는 가슴에 한 뼘 정도의 자국이 있고, 자전거 타다가 도랑으로 떨어져 이마에도 깊은 상처가 있다. 작은
얼마 전 쓰레기 매립장을 견학했다. 시 외곽 산속이었고 입구에서는 느끼지 못할 만큼 조용한 곳 이었다. 가까이에 가보니 산허리가 움푹 파헤쳐진 구덩이로 많은 쓰레기들이 매립되고 있었다. 하늘은 파랬지만 산중턱이 붉게 속살을 드러내고 신음소리를 내는 듯 아파 보였다. 거대한 중장비로 쓰레기를 메우고 또 메워 가는 가운데 연신 반입되어오는 폐기물차량이 줄을 서
음식을 넣으려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더 들어 갈 공간이 없다. 이사 올 때만해도 넉넉했던 것이 몇 달 사이에 이렇게 됐다. 식구도 많지 않은데 무엇을 채워 넣었는지 복잡한 냉장고 속을 보자니 머리가 뒤숭숭하다.올 봄에 냉장고 없이 살아 본 적이 있다. 그 때 가졌던 마음가짐이 새삼스럽다. 새집으로 들어 갈 시기가 맞지 않아서 모든 짐을 이삿짐센터에 맡겨두고
때 이른 서리가 내렸다. 유치원 통학버스 앞 유리도 진한곰국 색깔 성애가 끼었다. 나보다 10분 먼저 출근하는 남편이 듬성듬성 긁어 준 서릿발들이 아침햇살에 부서진다. 분주하게 모양새를 매만지며 아이들을 태우러 나갈 마누라를 위한 남편의 배려가 느껴진다.작은 차 기사님이 충주로 이사를 간 후 유치원 봉고차 운행은 내 차지가 되었다. 일곱 학급의 아이들 등하
요즘 각종 매스컴에 터져 나오는 제자들의 교사폭행에 기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진다. 38년 가까이 초등 현장에서 교육자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임해 왔지만 갈수록 학교의 현실은 너무나 개탄스럽다. 서울시교육청의 체벌 금지가 시행되면서 각 학교에서 교사들의 사기가 곤두박질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인천의 한 중학교에서 1학년 남학생이 수업 방해를 꾸짖는 40대 여교사
새벽 다섯 시! 어김없이 오늘을 시작하라는 알람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알려온다. 눈을 감은채로 핸드폰을 더듬더듬 찾아 알람을 종료시킨 후 멀뚱멀뚱 천정을 향해 눈 운동을 해본다. 오늘 스케즐이 어떻게 되더라? 내가 오늘 아침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뭐였지? 오늘 아침메뉴로 미역국을 끓여야 할까? 말까? 생각을 하다가 벌떡 일어나 불을 켠다.오늘은 아들의 생
우리가게 앞에는 두 대의 오토바이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배달을 위해 항시 대기 중인 것이다. 그중 노란색 오토바이는 내가 배달을 다닐 때 타는 것이다. 오토바이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육 년 전 처음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다녀온 기억이 새삼스레 떠올라 씁쓸하다.자동차를 운전할 때와는 달리 두려운 마음으로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그런데 도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