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때 잘 해 후회하지 말고"

재미있는 수맥이야기
“있을 때 잘 해 후회하지 말고”
삶이 고달프고 힘이 들 때 머리를 식힐 수 있는 방법에는 낚시도 있다. 필자에게도 세상이 막막하게만 느껴졌던 한 시절이 있었으니, 당시 매일같이 찾아갔던 곳이 낚시터이었다. 매일같이 붕어와 씨름을 하며 세월을 잊게 해 준 낚시가 나에게는 묘약(妙藥)이 되었으나 가족들에게는 고통을 가중시키는 장소로 작용했다. 삶이 힘든 이들에게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장소로써 필자는 公園墓地를 추천하고 싶다. 삶의 연장선인 그곳은 나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과거 까지도 짐작케 해 주는 장소로 부족함이 없다. 晩秋의 안개 자욱한 공원묘지에서 옷깃을 파고드는 寒氣는 꽤나 을씨년스러웠다. 영구차가 도착하기에는 이른 시각, 이곳저곳 배회하며 비문을 읽어보니 아들 못 낳고 죽은 자로 시작하여 비석이 좁을 정도로 자손들 이름이 빼곡하게 박혀있는 비문 등 참 다양하다. 태어나고 죽은 날짜들은 더 千差萬別이다. 장수(長壽)하고 죽은 이로부터 해서 30대에 생을 마감한 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검 앞에 각자의 삶은 또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에 궁금증이 더해진다. ‘영원히 살 것처럼 몸부림쳐 본 들, 1백년도 못 살 인생, 어떻게 살다 가는 것이 가장 보람 있는 삶이 될까!’ 이 세상에 올 때에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에는 순서가 없다는 진리 아닌 진리 앞에 많은 것을 되돌아 볼 수 있었던 시간에 감사했다. 이날 묻힐 亡者도 나이 50을 넘기지 못한 젊은 부인으로서 졸지의 참사(慘死)로 부인과 사별하게 된 남편은 아예 관 속으로 뛰어 들어가 시신을 부여잡고 통곡하는 모습은 차마 절규(絶叫)였다. 간신히 끌어 내 하관을 시작하자 이번에는 광중 안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부둥켜안고 수의를 벗기려는 것을 강제로 끌어내 서둘러 일을 마쳤다. 유족들의 모습에서 많은 우환이 서려 있음이 느껴졌고 그중 한 분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섬뜩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선친이 작은 부인을 맞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갖은 고통을 참다못한 큰 부인이 ‘복수를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작은 부인의 자손들 중에는 어린 나이에 죽거나 사고를 당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이번 같은 참변에 까지 이른 것이다. 이복형제들 간의 화합을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던 고인! 복잡한 집안에 시집와 덕(德)을 쌓은 공로(功勞)가 있었기에 공원묘지에서 찾기 힘든 수맥 피한 자리에 묻히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선친에게 한(恨)을 품고 자살한 큰 어머니의 한(恨)도 풀어 드려야 하고 선친 가까이 쓴 묘도 옮겨야 한다. 또한 수맥 흐르는 조부모의 묘지와 장손의 꿈에 ‘춥다’고 수시로 나타나는 선친의 묘 이장도 시급하다. 큰어머니의 재앙(災殃) 때문이었을까? 부부애가 얼마나 두터웠으면 저토록 부인의 시신을 부여잡고 몸부림치나 싶던 남편. 듣고 보니 밖으로만 돌며 술의 노예가 되어 온갖 횡포로 고인의 속을 꽤나 썩였다고 한다. 부인의 주검을 계기로 늦게나마 떳떳한 家長이 되어 행복한 가정 이끌었으면 좋겠다. 요즘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장미 빛 인생’이란 드라마가 생각난다. 남편의 외도로 무던히 속을 썩던 맹순이가 위암에 걸려 죽게 되자 반성하고 돌아와 부인을 살려보려는 남편, 어떻게든 살아보려 몸부림치는 맹순이의 모습은 많은 시청자들의 눈물을 흘리게 하고 있다.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듣던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란 유행가 가사가 유난히 정곡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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