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태 소설가

새 밀레니엄의 출발은 장미빛처럼 화려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어린이의 마음만큼이나 꿈으로 가득차 있었다.
IMF에서도 벗어났고, 남북 통일의 문도 열렸다고들 했다. 경제 위기도 끝나 시중 증시는 1천포인트를 육박하고 있으니 경제대국으로서 “세계 일류국가로 가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김대중 대통령도 신년사에서 자신있게 말했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도, 음성의 설성공원에서도 축폭의 불꽃이 하늘에 치솟고 있었다. 장미빛 꿈이 하늘에 수놓았었다. 청와대에서도 그랬고, 정부 여당 어느 곳에서니 샴페인 터뜨리는 소리가 우리 국민들의 귓전에 들려 왔을 때, 반신 반의 하면서도 기대에 한껏 부풀기도 했었던 것이 새 천년을 맞은 그 날 아침이었다.
정부는 국민을 향해 여러가지를 약속해 주었다. 철저한 구조조정으로 국가 예산을 절약해서 국민 복지정책에 우선을 두겠다고 했다.
농민의 부채도 탕감해 주겠다고 했다. 개혁을 단행하여 부정부폐를 근절하여 성실인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노라고 했다.
지역 감정도 해소하겠다고 했다. 적어도 국민의 정부에서만은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위기는 없다”고 했다. 그리하여 김대통령은 북을 방문해 김위원장을 만났고, 그 덕택에 노벨평화상도 받았다.
이런 일들이 얼마나 경사스럽고, 축복할만한 일들였던가? 이 얼마나 화려하고 중엄한 언어들이었던가! 아, 황홀했던 새천년, 새 아침의 꿈이여!
그럼에도 그 한해 동안 국민들 대다수는 무엇 때문에, 새로운 천년을 맞이해 안았던 장미빛 꿈은 어디에다 팽개치고, 울분과 실의에 빠져 그들을 향한 원망을 하늘 끝까지 토해 내고 있단 말인가!
“위기는 절대로 없다”고 하던 그 위기는 이 나라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지 않은 곳이 없고, 그 종류 또한 다양하다. 정치위기, 경제위기, 의료위기, 금융위기, 사회위기, 교육위기, 검찰위기, 도덕성상실위기, 불신위기 등 그야말로 총체적 위기요, 복합적 위기 투성이다.
이로 인해 우리 국민들에게 안겨 주었던 밀레니엄 장미빛 꿈은 허탈과 좌절의 잿빛으로 얼룩이 진채 만신창의로 나둥글어져 버렸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팠던 사실은 농민의 부채탕감 요구 시위였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대통령이 약속한 것을 지켜 달라고 전국의 도저에서 일어난 궐기였다.
음성의 한벌리 36번 국도에서도 수백명의 농민이 경찰의 저지를 받고 길거리에 주저 앉아 땅을 치고 통곡을 했다.
그 때 그 시각 대통령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 노르웨이로 날아가고 있었다. 화려한 외치(外治)를 위해 북한동포는 중요해도 우리 남한 농민은 뒷전으로 미루었던, 내치부재(內治不在)의 비난 속에 새 천년의 한 해는 훌쩍 넘어갔다.
또 다시 2001년의 새 해, 새 아침의 해가 떠오른다. 올해의 첫 아침에 떠오르는 해라고 해서 여느날 아침의 해와 다를바 없다.
그러나 어제의 해나 작년의 해는 이미 역사의 장으로 넘겨진 시간인데 비해 새로 맞는, 새해의 새 아침 해는 꿈과 희망이 있는, 그야말로 장미빛 황홀한 꿈을 동반한다. 그 꿈은 미래를 향한 도전이요, 비전이기 때문이다.
제발 올해만은 잿빛으로 얼룩진 새 천년 첫해의 악몽을 씻어 버리고, 진정으로 장미빛 화려한 희망의 꿈이 영그는 2001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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