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희

올해는 감자 농사가 풍년인가보다.

만원으로 감자 한 상자를 샀다.

감자는 전분이 많고 팍신팍신하다.

아이들의 간식으로 쪄주려고 감자를 꺼냈다.

감자 칼에 벗겨지면 뽀얀 속살이 드러난다.

감자를 보면 생각나는사람이 있다.

10년 전, 모 백일장 대회에서 만난 그 분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분의 모습은 수수하고 평범한 우리네 어머니 모습이셨다.


서울에서 살다 오셨다고 했는데 도시의 모습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고, 시골 냄새가 물씬 풍기었다.

느린 말투에 가냘픈 목소리로 나에게 잔잔하게 다가왔다.

그 분과 첫 대면을 하는 순간 나의 뇌리에 ‘감자’라는 말이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해서 그 선생님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한 번은 선생님의 볼일에 내가 동행한 적이 있었다.

거리는 떨어지는 낙엽이 흩어지며 가을의 정취에 빠지게 했다.

나의 갈색 바바리 코트가 잘 어울리던 날이었다.


차도를 건너려는 순간 나의 손목을 덥석 잡으시더니 좌우를 살피신 후 빠른 발걸음으로 건너셨다.

신호등도 없는 작은 시골 동네에 차가 지나가면 얼마나 빨리 지나간다고 예순이 가까운 나이에 나를 어린 아이처럼 이끄시던 선생님의 모습에서 감자의 냄새가 풍겨 오는 듯 했다.

플라터너스가 곱게 물든 둑길을 따라 선생님의 손목에 끌려 걸어가던 그 순간 선생님의 뒷모습을 한참이고 빤히 쳐다보았다.

권태응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감자 꽃’ 시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 중의 하나이다.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마나 하얀 감자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마나 자주 감자


권태응님의 시를 읽으면 절로 정겨움이 그려지고 거기 사는 소박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주 짧은 시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이다.

지금 선생님의 모습은 주름이 많아지고 나이가 더 드셨지만 10년 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느낌은 한결같이 나에게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아가다 보니 여러 종류의 사람과 만난다.


달콤한 말로 사람의 마음을 끄는 사탕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달고 맛있는 고구마의 모습을 하는 사람도 만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보면 변하게 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나의 마음속에 들어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감자 꽃처럼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을 만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감자처럼 늘 같은 맛이 나는 분을 만난 것을 보니 나는 인복이 많은 것 같아 정말 행복하다.

 

<가섭산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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