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평영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이하는 목련 나뭇가지에는 꽃눈이 보송한 털에 감싸여 있다. 한줄기 햇살이라도 더 받으려고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백 미터 달리기를 하려고 출발선에 서서 신호탄을 기다리는 유치원 꼬마 같은 모습이다. 어쩌면 그 모습은 3월에 입학하는 초등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또한 사회의 첫발을 내딛는 사회 초년생이나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두근거리는 마음일 것이다.


올해 스무 살이 된 큰아들이 며칠 전 고등학교를 졸업 했다. 졸업식장에 조금 늦게 갔더니 벌써 끝나고 각자의 교실에서 개개인에게 졸업장과 상장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낯선 교실 풍경이 생경스럽다. 좁은 면적의 교실과 예전의 반도 되지 않은 적은 수의 학생들, 교복 입은 아이는 한 명도 없고 모두 사복차림에다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은 학생도 여러 명 눈에 띄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대학입시 공부에 치여 지쳐있었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아이들은 밝은 모습이다. 교실 뒤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만감으로 교차된다. 잘 참아준 아들의 늠름한 모습에 감동되고 그 동안 아이들을 위해 수고해주신 담임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사회인이 되면 모든 일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한다는 담임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을 아이들은 얼마나 새겨들었을지 모르겠다.


대학생활을 앞두고 있거나 직업을 가져야 하는 졸업생들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고교시절에 느껴보지 못했던 자유 속에서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고, 이성에 대한 관심이나 또는 미래에 대한 꿈으로 가득찰것이다. 새로운 세계로의 도전 그것은 병아리가 알을 깨고 세상 밖을 나오는 것만큼이나 고통이 따를 것이다. 그처럼 사회의 벽이 단단하다는 것을 느끼기에는 앞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어야 알 것이다.


3월을 준비하는 2월의 도화지에 아이들은 어떤 그림을 그릴까. 3년간 고생하며 최선을 다한 결과를 하루의 시험으로 승패가 좌우되고 그 결과에  따라 인생길은 여러 방향으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는 아이들, 대학의 합격과 불합격을 사이에 두고 희비(喜悲)가 엇갈리는 요즘이다. 이제 막 성년이 되어가는 아이들이 겪기에는 너무나 벅차 보인다. 그 속에 내 아이도 들어있다. 병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올 때 좀더 쉽게 나올 수 있도록 어미닭이 밖에서 도와준다고 한다. 그것처럼 나도 아이의 선택에 도움을 주고 좀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나름대로 충고를 해주었지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아이는 이제 하나씩 경험을 하고 알아가며 때론 실수도 하며 인생을 배울 것이다.


사람은 늘 지나간 일들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남게 마련이다. 그중에서도 배움에 대한  욕구는 늘 허기진 마음으로 남아 있었다. 꿈속에서도 학교에 지각하거나 시험을 보느라 애를 쓰는 꿈을 꾼다. 공부는 때가 있다는 어른들의 말씀처럼 하고 싶다고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그렇지만 어려운 여건에서도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용기를 내는 일이다. 그 용기를 내는데 나는 20여년이 걸렸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대학생이 되었으니 말이다. 처음 내가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남편의 반대가 무척 심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반대하는 첫째 이유다. 배워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한창 자식들 교육에 신경을 써야할 때에 엄마로서 직무유기가 두 번째 이유라고 한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가정형편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반대에도 이미 나는 작년에 대학생이 되었다. 비록 원격시스템으로 혼자 공부하는 방송대 학생이지만 배운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삶에 원동력이 된다.


어느새 내 책상위에도 나를 위한 새 교과서가 가지런히 꽂혀있다. 여러 가지 일로 바빠 아직 교과서 한 번 펴보지 못했지만 새 책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해진다. 새 학년에 대한 기대와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의지가 작은 긴장감마저 들게 한다.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꿈, 희망, 사랑, 행복은 노력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행운이며 그 순간은 짧지만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개구리가 더 멀리 뛰기 위해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새로운 도약의 준비를 하듯 나는 오늘도 완성하지 못한 2월의 엽서에 색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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