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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들녘에서이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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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03.07  15: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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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눈이 많은 겨울이다.

삼한사온은 이제 초등학교 사회교과서에 서만 배운 얘기로 남아 버린 지 오래다.


올 겨울은 눈도 많이 오고 춥기도 몹시 춥다.

어제는 모처럼 친정집에서 자매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랜만에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마당에서 아버지만 열심히 일을 하신다.


딸들이 떠나기 전에 벼 방아를 찧고 계신 것이다.

요즘은 예전처럼 방앗간을 이용하지 않아도 가정 정미기로 손쉽게 방아를 찧을 수 있다.


조금씩 바로 찧어 먹으니 밥맛도 훨씬 좋다.

미리 찧어 놓아도 되겠지만, 금방 찧은 쌀을 주려고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분주하신 아버지를 보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버지의 딸 사랑은 각별해서 딸 부잣집 딸들이란 소리 듣지 않게 없는 살림에도 온 신경을 써주신 분이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쌀이 정말 귀했다.

쌀밥 도시락을 싸온 친구는 부잣집이 아니면 어려웠다.

어려운 살림에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으로 우리자매들은 점심시간에 흰쌀밥을 먹어 부러움을 샀다.


근면 절약으로 똘똘 뭉치신 아버지는 농번기 때 열심히 농사지으시고 농한기인 겨울에는 강원도 탄광으로 일을 하러 가셨다가 봄이 되면 돌아오시곤 했다.

아버지가 돌아오는 날은 생일날 보다 더 좋았다.

맛난 반찬에 흰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흰쌀밥에 김치만 있으면 어떤 반찬도 부럽지 않았다.


이제는 검은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아진 아버지 평생 흙과 함께 살아오신 분이다.

추수가 끝난 들녘에서 농사가 으뜸이고 쌀이 대우받는 시절도 아닌데 힘에 겹다고 하며 허리를 두드리는 모습이 벼 끄틀처럼 앙상해 보여 애처로웠다.

농촌에서 태어나 농군의 아내가 된 지금도 후회는 없지만 만족할 수는 없다.

가면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촌의 경제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의 한숨소리보다 젊은 농부의 한숨소리가 더 가슴아파지는 오늘이다.

WTO반대시위로 서울에서 홍콩까지 농민들이 힘을 모아 출발을 했다.

쌀 개방반대에 농민의 온힘을 실어 외쳐보았지만 현실은 냉정했고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행보만 계속할 뿐이었다.


이런 현실이 계속되면  우리 땅에서 농사 진 쌀로 지은 밥을 먹지 못하는, 슬픈 날이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해가 바뀌면 딸애의 대학등록금 때문에 또 한번의 홍역을 치러내야 한다.

아버지세대에나 지금이나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는 자식 대학입학은 빛 잔치의 시작이다.


입학축하의 웃음소리보다 뒤에서 들리는 한숨소리가 더 큰 메아리로 가슴을 때린다.

겨울들녘에 끝없이 펼쳐진 눈의 향연이 정말 아름답다.

하지만 눈 때문에 눈물 짖는 많은 농부들을 생각하면 잠시 아름답다고 느낀 마음도 죄스러워 진다.


여름에는 홍수로 겨울에는 폭설걱정으로 사계절 마음 편 한 날 없는 농부의 가슴은 시커멓게 타 버렸다.

어제는 타지에서 공부하는 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상 받았어요! 갑자기 힘이 생긴다.


그래 아무리 추운 겨울 뒤에도 봄은 오는데 힘들어 잠시 희망이란 단어를 잊고 지냈던 것 같다.

조금 지나면 겨울 들녘에도 파릇한 새싹들이 돋아나고 기지개 편 농부들은 희망의 삽질을 또다시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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