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선

 

동트는 새벽 대문을 활짝 열었을 때의 상쾌함이 삼월의 느낌이다.

간혹 눈발이 날리고 거센 모래바람이 불어올 때도 있지만 시냇가에 버들강아지 움트는 것을 보면 봄의 시작임을 알 수 있다.

삼월은 이웃집 입학생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지고 양복입고 첫 출근하는 청년만 보아도 든든함이 느껴지는 계절이다.


삼월 속에는 새로운 기대감이 담겨있다.

특히 힘든 겨울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희망의 달이기도 하다.

이렇게 삼월을 생각하며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삼월 속에 고히 잠들고있는 우리들의 영원한 누나가 있기 때문이다.

삼월에 삼일절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청소년들은 교과서 속의 독립만세와 하루 쉴 수 있는 공휴일에만 감사하겠지만 삼일절을 기억하는 세대들에게는 아픈 한숨만 흘러나올게다.

열여섯 어린 나이에 독립만세를 외치다 사라진 소녀가 있는데, 현실 위에 열여섯 소녀들은 철없는 어리광쟁이다.


내 집 뉘 집을 떠나 한 명 아니면 두 명의 자식이 고작이니 공주나 왕자만 있을 뿐 그냥 아이들은 사라진지 오래다.

우리에게 삼일절 같은 시련이 만약 닥친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지 상상만으로도 오싹해진다.


문명이 발달하고 개인이 잘살게 될수록 우리보다 나에게 존재가치를 두고 사는게 현실의 이기심이다.

사실 아이들이나 일반서민만을 타박할 필요는 없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도 시원찮을 정치인들이 삼일절에 골프행각이나 버리는 세상에 누굴 탓하랴.


요즘처럼 어렵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서민들은 할말이 없고 지탱할 힘이 없다.

정치인들은 현장에 나가 보기는커녕 TV뉴스나 신문도 안 보는지 궁금하다.

논밭에 무엇을 심어야 옳을지 몰라 한숨만 쉬는 농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울화통이 치민다.


선거기간에만 두 손 다정히 잡고 웃어주는 시대는 벌써 지나고 있는데도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다.

앞에서 이끌어 주는 이가 올바르게 행해야 하거늘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중심이 없으니 뒤따라가는 사람들은 불안과 초조로 하루 하루를 지낼 뿐이다.

요즘 읽을거리로 화재가 되고있는 어느 지방 자치단체의 글을 보았다.


한 군 소재지를 주식회사로 보고 그 군민들에게 어울리는 정치를 펼치고있는 멋쟁이 단체장에게 정말 많은 박수를 보내고싶다.

어려울 때 누군가의 작은 손길이 큰 힘이 되고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 같아 잠시 침울했던 하늘이 맑아 보이기 시작했다.

삼월은 포근하고 따듯함만 생각하는 계절만은 아니다.

꽃샘추위가 잠시 풀어지기 쉬운 마음을 다잡아준다.


자연처럼 위대한 스승은 없다는 말을 또 실감하고 지나가게 된다.

잠시 봄이 오는 들녘에서 주춤거리던 발걸음을 빨리 움직이며, 검게 탄 얼굴에 밝은 웃음이 번지는 농부의 얼굴을 보고싶다.

농부가 웃어야 그 나라 국민 모두 가 웃을 수 있다는 글귀를 어느 농촌관련잡지에서 읽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가슴에 이렇게 와 닿는다.

편지 맨 마지막 줄에는 어느 종교에서 알리는 말을 꼭 쓰고싶다. “내 탓이오”

 

<가섭산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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