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분

 

아나키스트 시인 권구현은 ‘모든 아름다운 것은 슬픔을 지녔다’고 했다.

슬픔의 예각을 나타내는 말로서 이보다 더 적절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고통을 당할 때나 슬픔을 느낄 때보다 오히려 아름다운 것을 볼 때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장엄한 노을과 바람, 그리고 구름과 함께 토담이나 들판을 비껴가는 석양을 바라보노라면 문득 찬란한 슬픔이 느껴지고, 거기다 사유마저 더한층 깊어지면 궁극에는 그것이 지니고 있는 생명의 유한성에 천착하게 된다.

살아있는 동안에, 살아있는 몸짓으로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보내오는 영혼의 교감은 때로는 한편의 대 서사시와 같은 감동이 밀려오는 것이다.


오늘도 먼 하늘과 눈 맞춤을 하며 들길을 가던 아침. 길가에 피어있는 작은 꽃들을 발견하곤 새삼 감탄하며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제비꽃과 민들레, 그리고 노란 꽃다지와 하얀 냉이 꽃들이 잔잔한 바람에 일렁이며 해말갛게 웃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줄곧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 평소 그 길을 오가던 나는 무심하게 지나치느라 자세히 들여다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나, 여기 있어요’ 하며 고사리 손을 흔드는 아이처럼 수줍은 표정으로 서있는 것이다.


‘그래그래, 너 참 예쁘다’ 귀여운 그 모습을 어루만져 주려고 바람이 쓰다듬고 간 꽃들에게 손을 주려다 차마 손끝마저 댈 수 없는 애처로운 이쁨이여! 나는 그만 살짝 눈물만 보이고 말았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의 의미마저 희미했던 풀꽃에서 생명의 환희를 끌어올리는 아름다운 슬픔을 보았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느 날, 예수의 시신을 끌어안고 있는 ‘피에타’ 상을 그림으로 보면서 모성의 공감에 의한 단장의 슬픔을 뼈저리게 느꼈던 적이 있다. 지극히 고요한 슬픔과 비애에 빠진 채, 하염없이 아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성모의 모습은 차라리 비극의 극치를 넘어선 처절하도록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비극을 그토록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니......


그것은 새로운 경이였으며 슬픔을 가장 극대화 시킨 무언의 통곡이기도 하다.

이처럼 가장 슬픈 아름다움과, 반대로 아름다운 감동이 주는 눈물을 어찌 사람과 꽃에서만 찾을 수 있으랴.

전에 어느 일간지에 칼럼을 쓸 때 짧게 언급한 적이 있지만, 우리 집에서는 ‘피터’ 라는 이름을 가진 한낱 잡종에 지나지 않은 개를 기른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을 나간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 고샅을 돌고, 신부감을 찾아갔나 싶어 이웃집을 수소문하며 찾았으나 충직하기 이를 데 없던 그 놈은 사흘이 지나도록 오리무중이었다. 한낮에도 사람이 들로 나간 후면 가끔 빈집털이가 다녀가는지라 애석하지만 체념을 할 때였다.


그리고 나흘 째 되던 날, 산 밑에 인접한 고추밭에서 일을 하던 이웃집 아주머니가 늑대 울음 같기도 하고 개 울음 같은 소리를 들었다며 혼비백산해서 내려왔다.

그 이야기를 듣고 퍼뜩 짚이는 데가 있어 그 곳으로 달려갔다.

조심스럽게 헤치고 들어간 솔숲에는 실로 감동적인 장면이 펼쳐져 있었고 나는 목이 잠길 수밖에 없었다.


도둑의 손을 탔으리라 예상했던 ‘피터’는, 올무에 걸린 채 빠져나오지 못하는 동료의 곁에서 쭈그리고 앉아 지키고 있었다.

피골이 상접해가는 몰골로 마주앉아 있던 두 마리의 개는, 사람을 보자 검은 눈에서 사리 같은 눈물이 첨벙 굴러 떨어졌다.

나는 그만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안도하는 피터를 와락 끌어안고 말없이 쓰다듬었다.


목둘레의 털이 그처럼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 때의 장면을 생각하면 감동이 되살아나 가슴이 뻐근해진다.

눈부시게 찬란한 오월!

청보리가 알을 배며 키를 뽑아 올리고, 사과와 복숭아꽃이 녹두알 같은 풋 열매를 남기며 분분히 흩날릴 때, 풀코스를 완주하는 마라토너처럼 아카시와 등나무는 성큼 달려와 환한 등불을 내걸고 있다.


이처럼 가장 왕성한 생명과 아름다운 절정이 실은, 삶과 죽음의 바톤터치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숭고한 과정이라는 걸 알면 눈물겹다.

생명의 유한성을 지닌 것들이 최고의 정점에서 지우는 아름다운 소멸! 그것은 또 다른 생명을 키우기 위한 아름다움이 지닌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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