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묏자리는 혼령들의 각본에 의해 정해져 있었다"

독한 개도 개장사 앞에서는 개호주를 만난 것처럼 사타구니에 꼬리를 감추고 꼼짝을 못한다. 땅꾼들이 떡 주무르듯 만져도 물지 못하는 것 또한 뱀이다. 잘라내도 계속 움이 올라오는 나무나 칡넝쿨은 뿌리의 뇌두 부분을 비틀어 놓으면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식물은 꽈배기처럼 비비 꼬는 사람을 가장 무서워한다나.
4년 동안 병환 중에 있던 50대 부인의 죽음으로 찾아간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ㅇㅇ리 J씨(59세)의 선영에서 망자의 사촌 시동생인 J씨의 안내를 받았다. 족히 50도는 될 법한 경사지를 굴삭기는 잘도 올라와 묏자리를 닦았다. 아마도 산이 말을 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서 굴삭기가 가장 무섭다' 할 것이다.

한창 작업을 하고 있는데 활개지 지점에서 빈 공간이 나타났다. 직감적으로 관이 썩어 주저앉아 생긴 공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삽으로 헤쳐 보니 남자로 보이는 유골이 드러났다. 장지(葬地)에 올라온 70대 중반의 동네 노인 분들도 이곳에 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없는 것으로 보아 1백년은 훨씬 넘은 듯 했다. 정체불명(正體不明)의 유골이 나오자 망자의 사촌 시동생은 작업을 중지시키고 산 아래로 내려가더니 북어포와 술, 과일, 베끈 등을 사들고 올라왔다. 정성껏 예를 갖추어 제를 올리고 나자 작업은 진행되었다. 유골의 상태는 두개의 수맥 속에서도 배수가 양호한 토질에 묻혀 있다 보니 그런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망자의 묘지 조성을 끝내자 그 아랫부분에 정체불명의 유골을 정성껏 안장(安葬)하여 봉분을 만들고 잔디도 심었다.

작업 중에 그곳이 묘로 판명되면 다른 곳으로 자리를 바꾸거나 그 유골을 다른 곳으로 정성껏 이장해 줘야 함이 당연하다. 이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될 법 한데 J씨가 정체불명의 유골에 지나칠 정도로 정성을 들이는 이유가 궁금해서 물었다. 자기의 부인은 크던 작던 사사건건 현몽(現夢)으로 알아내어 속이고 감추어도 다 들어나기 때문에 조그마한 거짓말도 할 수가 없을 정도라 했다. 사촌형수가 죽던 날 새벽, '불이 너무 무섭고 싫으니 불 속에 들어가지 않도록 동서(同壻)가 제발 좀 도와 달라'며 형수는 꿈속에서 애원을 하더라고 했다.

아침 식사를 하던 중에 사촌형수의 사망 소식이 전해 왔다. 큰집에서는 이미 화장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있던 상태로써 ‘형수가 오죽 화장이 싫으면 꿈에 사촌동서를 찾아와 그런 부탁을 다 했을까?’ 식사를 마치고 장례식장으로 달려간 J씨 부부는 꿈 이야기를 하며 ‘화장만큼은 절대로 안 된다’고 사촌형과 조카들을 설득했고 매장을 하기로 계획을 바꾸게 되었다.

다음 날, J씨의 부인은 또 다른 꿈을 꾸게 된다. 다 헤지고 물에 흠뻑 젖은 누더기를 걸친 노인이 떨며 부인에게 다가왔다. '너무 추워 견딜 수가 없으니 제발 나 좀 도와주시오' 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잠에서 깬 부인은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했고 도대체 그 정체불명의 노인이 누구이며 무엇을 어떻게 도아 달라는 것일까? '하고 이내 궁금해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던 중에 정체불명의 묘 터가 나타나자 꿈에 나타나 도움을 청했던 노인의 묘라는 것을 직감하게 되자 정성을 쏟았던 것이다.

장례기간에 일어났던 일련의 미스터리 현상들을 종합해 보면, 패철(佩鐵)을 돌려가며 배산임수(背山臨水)를 따지고 수맥을 봐 가며 잡았던 묏자리도 알고 보면 내가 잡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불이 무서우니 땅에 묻어 달라’며 호소를 했던 사촌 형수와 ‘추우니 도와 달라’하던 노인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꿈속의 사건들은 혼령(婚齡)들의 각본에 따라 묏자리도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을 내가 말뚝만 꽂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 이외에도 다른 곳에서 겪었던 유사한 사례들이 있었기에 영가들에 이끌려 묏자리를 잡게 되는 알 수 없는 힘을 나는 믿는다.

정체불명인 노인의 혼령은 자신을 도와 준 두 부부에게 틀림없이 큰 보답을 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런 경우, 내 조상보다도 더 크게 돕는다고 한다. 이날 현장에서 큰 덕을 쌓고 있는 J씨가 부러웠고,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되었다.


한국수맥연구소: http://www.watervein.pe.kr


묏자리를 조성하다 나온 정체불명의 유골


두개의 十자 수맥에 묻히다 보니 무연고 묘가 되었을 것이며 다행이 배수가 양호한 토질 덕택에 그런대로 큰 유골은 남아 있었다.


전국적으로 내리던 비는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하루종일 퍼 부으며 졸지에 두개의 묘를 조성하는 어려움을 두배로 가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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