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분

 

‘늙으면 시골에서 농사나 짓겠다’ 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는 수가 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그처럼 무책임한 말이 있을까 싶어 가벼운 분노마저 느낀다. 농사짓는 일이 무슨 노년의 여가선용 쯤으로 잘 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기야 농업에선 정년퇴직이 없다. 그런 면에서 도시의 직장생활에서 은퇴한 사람들에겐 새로운 직업의 연장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늙은 뒤... 라야 하는가.


농사란 끝없는 노동력과 관심, 인내, 근면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다. 그리고 어느 직업보다도 전문적인 과학을 바탕으로 한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새로운 영농법을 탐구하고 개발하면서 갈수록 현대화 되어가는 영농장비의 기술습득도 익힐 줄 알아야 한다. 그러러면 늙음보다는 젊은 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직업인데 정작  농촌에는 젊은 인력이라곤 전혀 없는 실정이다.


젊은 시절 자기의 전공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노후에 시골에서 맑은 공기와 흙을 벗하며 조그만 채마밭이라도 가꾸며 사는 기쁨을 누리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농사짓는 일을 만만히 여겨서는 안된다. 기왕 농촌으로 돌아오려면 조금이라도 피가 뜨거울 때 돌아와, 비과학적인 생활이나 낙후된 문화수준을 위해 젊음을 투자하고 기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단지 개인의 안일한 생활만을 꿈꾸는 발상은 이기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 농촌은 그야말로 반가운 사람이 찾아와도 돌아다 볼 겨를이 없다고 할 만큼 바쁜 철이다. 사과 적과와 배 , 복숭아 봉지 씌우기로 하루 종일 뜨거운 햇볕아래서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런 와중에서 틈틈이 논에 물꼬도 살펴야 하고, 병충해 방제와 우후죽순처럼 올라오는 잡초제거에  힘을 써야 한다.

몇몇은 품앗이와 두레로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부족한 인력과 고령화 된 일손들은 고된 작업으로 인해 관절염이나 만성피로가 쌓여 좀체로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그나마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대부분이고 보니, 서로서로가 안타까운 연민으로 바라보면서도 몸에 밴 근면성이 쉽사리 일손을 놓지 못한다. 이것이 평생을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직업에 대한 숭고한 집념이고 경의심이다.


나 또한 지금까지 농업에 종사하면서, 그리고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평생 동안 농업에서 발목을 빼지 못하리라. 지금까지 쌓아온 이력으로 하여 갈수록 자신감이 생겨야 할 농사일이 더욱 어렵게 느껴지고, 때로는 무력감이나 회의에 빠질 때가 있다. 하지만 상처 입은 자식처럼 더욱 뜨겁게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것은 자연치유적인 힘을 믿기 때문이다.


특히 무분별하게 들여오는 외국산 농산물은 고달픈 우리 농민들을 소리 없이 살상하는 무기나 다름없다. 이 대책없이 밀려오는 진군의 세력을 막아야 할 방법은 새로운 영농법과 첨단 지식으로 무장한 젊은 힘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농촌의 방패가  되어주어야 할 젊은이들이 어느 휘황한 도시에서 익명으로 떠돌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농촌은 더욱 외로운 소외감에 빠져든다.

도시에선 실직자가 늘어가고 거리엔 노숙자가 넘치는데, 농촌은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는 현실은  기막힌 아이러니가 아닐까?


농업은 힘든 직업이지만 3대 기피 현상에 들 만큼 절대로 나쁜 직업이 아니다. 원심 분리기가 돌아가듯 숨 가쁜 도시에서, 전문지식을 갖춘 젊은 인력이 농촌으로 U-턴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되면 고령화 되고 빈약해져가는 농촌이, 젊은 힘으로 채워질 수 있는 수급정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농업이란 늙어서 농사나 짓는 대상이 아닌, 젊은이들이라면 누구나 힘찬 패기와  용기를 지니고 도전할 수 있는 꿈의 직업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가섭산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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