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을 결심하고 이곳저곳 발품을 팔아보지만 정말 쉬운 일이 아닌가 봐요, 어떻게든지 땅을 구입해서 아버님과 큰어머님을 이장해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모든 것은 때가 있는 걸까요? 이장 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얼마 전에 전세 계약을 했고 며칠 있다가 시골에 시어머니 댁으로 이사를 갈 계획 이예요. 그런 상황(전세돈을 빼서 친정의 묘지 이장비용 마련)인데도 아무런 반대 없이 그렇게 하라고 하는 남편이 나이는 어려도 참 대견도 하고 고맙고 그래요. 이장을 하고 나서 집안에 우환이 조금이라도 사라진다면 저의 얘기를 선생님의 칼럼에 올려서 집안의 우환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한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큰 바람이 있어요.

 

배다른 큰언니는 주식해서 돈 다 날리고 연락도 잘 안되고, 둘째 언니는 월급을 석 달째 못 받아서 힘들다하고, 우리 큰오빤 영세민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고 있고, 둘째오빤 결혼도 못한 채 교통사고로 제정신도 아니고, 몇 년째 얼굴도 보기 힘들던 셋째오빠는 전화가 왔는데 교통사고로 병원에 있다하고, 막내오빤 새언니 암 수술 받고 몇 달째 일한 돈 못 받아 카드 빚만 늘어 일당제로 들어가고, 이런 상황 속에서 누가 빚을 내서 이장을 하겠어요.

 

그래도 우리 자식은 아직 어리고 아직은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저 혼자라도 부담하여 이장을 하려고 합니다. 형제들도 이장을 다 찬성하고 워낙 없는 사람들이지만 조금이나마 보태려고도 하는데 왜 그렇게 이장할 자리가 안 날까요. 돈이 많으면 큰 산 사서 좋은 자리에 모실 수 있을텐데 적은 돈으로 맞추려니 너무나 힘이 드네요.

(위 글은 묘 이장을 하기 위해 노력하던 김모 여인으로부터 보내 온 감동의 메일 내용임)

 

묘지를 감정하던 날, 김모 여인(37세) 은 넷째 오빠와 함께 위암 수술을 받고 최근 퇴원하신 모친을 모시고 (충주시 금가면)왔다. 김모 여인은 후처였던 어머니의 슬하에서 4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큰어머니와 어머니가 보기드물 정도로 사이가 좋으셨다는 사실이다. 큰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어머니는 윗대 조상과 큰어머니의 제사에 이르기까지 지극정성으로 받드셨다고 한다. 묘를 감정하던 날도 어머니는 통닭과 각종 과일과 생전에 큰어머니가 즐겨 드셨다는 포도주까지 일부러 챙겨 오시어 (형님에게)잔을 올렸다.

 

문제는 남의 땅에 계신 아버지와 큰어머니의 합장묘를 이장할 장소였다. 보내온 사진으로 10등급지 판정을 받고 나자 조급한 생각이 든 김모 여인은 이장할 땅을 잘못 계약하여 계약금을 떼이기도 했다. 묘를 감정하던 날도 정확한 정보 없이 막연히 경기도 양평에 있는 공원묘지로 묏자리를 보러 가기로 나와 약속이 되어 있었다. 굳이 그곳이 아닌 여기서 가까운 충주나 음성 근방의 공원묘지도 수도권에서 한 시간 대이니 괜찮지 싶어 지척에 위치한 공원묘지로 안내를 했다.

 

다행이 수맥이 없는 곳을 고를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담당자의 덕분으로 어렵게 두 자리를 고를 수가 있었다. 한 자리는 선친과 큰어머니를 이장하여 합장으로 모실 자리이고, 그 옆에는 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모실 자리까지 준비하게 되었다. 공원묘지를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우리나라 뿐 아닌 아마 전 세계적으로도 수맥을 고려해서 조성된 곳은 단 한 곳도 없으리라. 거기다 들어오는 순번대로 안장되는 곳이 대부분으로써 그런 곳은 수맥을 알고 피하려도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수맥을 보고 골라서 계약을 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큰 행운이란 말인가!

 

막연해 하던 두 남매는 일사천리로 일이 이루어지고 있음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고 했다. 중환자인 어머니 역시 오늘처럼 머리가 맑고 가슴이 확 뚫려 본 날이 일찍이 없었다며 “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지난 밤 비구름으로 덮여 있던 하늘에는 뭉게구름과 푸른 하늘이 반반 어우러진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으로 얼룩진 산하는 한 폭의 멋진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재미있는수맥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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