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지내온 일생을 회고하면서 보편적으로 세 가지를 후회한다고 한다. 첫째, 베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로써, 가난하게 살았든 부유하게 살았든 '좀 더 베풀면서 살 수 있었는데.' 이렇게 악착같이 모으고, 움켜쥐어 봐도 별 것 아니었는데 왜 좀 더 나누어 주지 못했고 베풀며 살지 못했을까? 참 어리석게 살았구나. 이런 생각이 자꾸 나서 이것이 가장 큰 후회라 한다.

둘째, 참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로써 그 때 내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좋았을 걸, 왜 쓸데없는 말을 하고, 쓸데없이 행동했던가? 후회한다고 한다. 당시에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좀 더 참을 수 있었고,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참았더라면 내 인생이 좀 달라졌을 터인데 참지 못해서 일을 그르친 것이 후회가 된다고 한다.

셋째, 좀 더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로써 왜 그렇게 빡빡하고 재미없게 살았던가? 왜 그렇게 짜증스럽고 힘겹고 어리석게 살았던가? 얼마든지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었는데. 하며 복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며 또한 이러한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삶에 대해서 후회한다고 한다.

만일 내가 한 달 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을 지금 살고 있다면 어떤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를까! 미련 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쉬운 미련이 너무 많아서 차마 눈을 감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까?
주머니 속의 송곳은 뾰쪽하고 모가 나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들어나게 된다는 뜻의 낭중지추(囊中之錐)와 모든 잘잘못은 반드시 바른길로 돌아온다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여러분은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굳이 밝히려 들지 마라. 죽어서도 밝혀지게 되어 있다. 억지로 밝혀내려 하면 오히려 내 몸만 상한다.

(지난 호에 이어) 그토록 염원했던 선친과 큰어머니의 묘지를 이장하고 나자 막내딸과 막내아들에게 가장 먼저 변화가 왔다. 매일같이 쑤셔대던 두통과 가슴속에 쇳덩어리가 매달려 있는 듯 하던 증세가 사라졌다. 막내아들은 해외에 취업자리가 생겨 출국 날짜가 잡혀 있다. 심마니 친구를 쫒아 10년간을 따라 다녀도 한번도 캐 본 일이 없던 산삼을 자그마치 7뿌리나 캤다.

묘지 감정과 이장 하던 날 산에 오셨던 모친은 위암 말기 환자이다. 수술을 네 번씩 받다 보니 더 이상 잘라 낼 부위가 없다는 어머니는 길어야 한 달 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삶을 살고 계시다. 어머니는 그 고통을 참아 가며 이장 후에도 두 번이나 산소를 다녀가셨다. 가실 때마다 묘지 앞에 조아려 “빨리 나를 데려 가라”며 그토록 애원을 하시곤 했다.

그런 바람 때문이었을까! 공원묘지를 두 번째 다녀오고 나서 급격히 몸 상태가 악화된 모친은 이장 한 달여 조금 지나 남편의 곁으로 떠나가셨다. 선친과 큰어머니의 묘를 이장할 때 미리 준비해 두었던 그 옆으로 모시었다. 두 어머니의 슬하에서 낳은 10남매 중에 이장 당시 오지 않았던 6남매도 처음 장지에서 대면했다. 10남매들이 그동안 부모님과 관련되어 꾸었던 꿈 내용들이나 각자가 털어 놓은 고통들은 참으로 기구했다. 그랬던 남매들의 지난 번 이장당시 일그러져 있던 얼굴들이 그새 환한 모습으로 확실히 변해 있었다.

10남매에게 가장 큰 변화가 있었다면 뭉치기 시작했다는데 있다. 사촌들과 당숙들이 다 모인 장지에서 "남매들이 합심해서 조부모님의 묘소도 반드시 옮겨드리도록 하라”고 설득했다. 부모님 세 분은 최선을 다해 잘 모시었으니 우환의 근원이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하루속히 편히 모시게 될 때, 집안의 큰 문제점들은 사라지고 큰 축복도 축복도 함께 받게 될 것이라는 말과 함게....

'우리집 우환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행운을 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김모여인과 가족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재미있는 수맥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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