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 최창수,노인회장 최한옥,새마을 지도자 남 장태현,여 김학순,개발위원장 최원규,반장 최주영,최천식,반기환,최규수,총무 최덕영

조촌2리 마을 전경 일부
조촌2리 마을 전경 일부
 


충효예의 정신 계승,수박,인삼,고추,복숭아


□ 조촌리 연혁


조촌리는 본래 음성군 원서면 지역으로 자은갈(自隱葛)이라 하였다.

옛기록 여지도서(輿地圖書)의 기록을 보면 조촌리는 음성현 서쪽 원서면에 있으며 현에서 서남쪽으로 40리 지점에 위치하며 호수는 120호이며 남자 194명,여자 207명이다라고 되어 있다.

조천리는 1914년 행정구역의 통폐합에 따라 야동, 동막곡, 곡내,덕현,설매, 하리,기리, 양촌,삼기동을 병합하여 조촌리라 하여 원남면에 편입되었다.

조천리는 동쪽으로는 보천리, 서쪽으로는 삼룡리, 남으로는 종지봉, 북쪽으로는 덕정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 마을 자랑리 건립


원남면소재지에서 맹동면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원남면 조촌 2리는 산좋고 물이 좋은 데다 인심마저 풍부한 마을이다.

일명 장갈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초촌 2리는 오곡으로 장작불에 밥을 해먹는 마을로 예부터 소문난 곳이기도 하다.

이주 초기에 전주 최씨, 광주반씨, 곡산 연씨, 장연노씨가 모여 살며 인보상조로 협동하고 화합하여 효제하고 충신을 배출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마을앞에 들어서면 마을자랑비가 있는데 마을 자랑 건립을 위해 애쓴 추진위원들은 다음과 같다. 위원장 최익필, 위원 최규옥, 반영환, 연태희, 노재표, 총무 최원규씨가 맡아 심혈을 기울였다.

지난 92년8월 마을앞에 건립한 마을 자랑비에 최두옥씨가 기록한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최난수(1543~1597) 임진왜란때 분연히 일어나 근왕구국의 기치아래 달려가 적국 격멸에 분전하다가 노모의 병환이 위중하다는 소문을듣고 말을 달려 집에 도착하니 병고로 쇠약해진 모친은 “막중한 국사에 몸바친 사람이 사사로운 일에 연연해서는 안된다”고 꾸짖는 말에 감분하여 다시 전쟁터로 돌아가던중 마라우협곡에서 적병들의 기습을 받아 단신으로 고군분투하다 중과부적으로 장열한 최후를 마쳤다.

▲최세만(1637~1701)공은 효성이 지극하여 양친을 극진히 봉양하던중 현종 무신난에 모친상을 당하고 다음해에 부친상마저 당하여 애통해 마지 않았고 장례후에는 묘앞에 여막집을 짓고 삼년 시묘를 살았으며 평생토록 양친을  추모애도하였다 한다.

그 효행으로 효를 참으의 증직과 사미를 받았다.

▲최윤하(1619~1681)공은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 병환시는 불원천리하고 좋은 약을 구하다 정성을 다해 보살폈으며 부모상을 당해서는 삼년간을 불피풍우 시묘를 살았다.

▲연경흥(1775~1815)공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모친 병환이 위독할 때 단지 주혈로 사을 더 연명케 하였다.

부모가 먹고 싶다는 것을 구하기 위해 정성을 다해왔으며 부모가 돌아가신후에는 삼년간 시묘를 살았다.

▲노사진(1775~)공은 어려서 모친 병환을 삼년이나 지성으로 간호앴으며 상을 당하자 애통해 했다.경오년에 부친 병환이 위독할 때 단지 관렬로 수일더 연명케 하여 사람들은 그 효행을 오래도록 칭송하였다.

▲최익초(1910~1975)공은 사람답게 살려면 재력이 있어야 한다며 일찍이 만주에 가서 각고 노력 끝에 많은 돈을 벌었다. 1943년 거금 5만원을 희사하여 음성농업전수학교를 설립하여  현 음성중학교의 기반을 닦았고 같은대 조촌초등학교 설립부지 3천500평과 기금으로 1만원을 기부하여 지역사회 교육발전에 공헌한바 커 1974년 교육공로자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김옥근(1918년생) 고 최근수의 부인으로 삼심에 홀로된후 6년 장병의 시모병간호를 극진히 하였으며 시부에 대한 극진한 효성으로 음성군수로부터 효부상을 받았다.

▲이언년(1927년생)고 노충식의 부인으로 25세에 홀로되어 실성한 시부와 중풍으로 앓는 시모에게 극진히 봉양하여 음성군수, 음성교육장으로부터 각각 표창을 받았다.

▲이복순(1935~1984)최병두의 부인으로 남편의 장기간 지병을  정성으로 간호하여 완쾌케 하였으며 시부모에게 극진히 봉양하여 음성군수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 마을내 지명


조촌 2리는 덕고개 마을이라고도 불리우는데 덕고개 밑에 마을을 지칭한다.

마을내 지명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국사봉:덕고개 마을에서 삼용리로 넘어가는 고개

.삼봉:덕고개 서쪽에 외따로 솟아 있는 산

.윤씨묘:덕고개 앞 길가에 있는 조선 세조때 우의정 윤사근의 아내 정경부인 계림김씨묘

.용당고개:덕고개에서 삼용리 단원로 가는 고개

.설매:동막골 서쪽에 있는 마을로 충청감사 정씨의 애첩 설매가 살았다고 함.

.설매들:설내 동남쪽에 있는 들

.안산들:설매들 동남쪽에 있는 들

.서당말:설매에 딸린 마을로 예전에 사당이 있었음.

.구버니들:아랫말(하리)남쪽에 있는들

.무숫골:하리 북쪽에 있는 골짜기

.문수봉:하리 동쪽에 있는 산


□ 인정이 꽃피는 마을


조촌 2리 주민들은 순박하다. 예로부터 맛좋은 미질로 인정을 받아온데다 인심이 풍부했기 때문에 이웃간의 정도 두터운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조촌2리 주 수입원 수박,인삼,고추, 복숭아를 재배하여 높은 농가소득 향상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조촌 2리는 순박하고 후덕한 인심에 효열이 끊이지 않고 산에서는 나무들에서는 곡식 내에서는 고기들이 풍성하여 천혜를 받고 복된 마을로 문수봉과 더불어 영원히 번창 할 것이다.


<취재/정진순 차장>

 

<마을탐방/원남면 조촌 2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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