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철 (생극면 이장협의회장)

 


바야흐로 봄은 무르익어 신록의 여름으로 달려가는 5월중순경 나는 가족들과 함께 자동차를 달려 전북 고창IC 를 빠져나와 10km 정도를 가다보니 차창 밖으로 비춰지는 고창군 공음면의 청보리밭 사이로 펼쳐진 들판에 폭죽이 일듯 출렁이는 보리밭을 보노라니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들을 죄다 되씹게 해줍니다.


마침 이곳은 청보리 축제가 막 끝난 뒤라서 축제의 여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렁이는 보리밭에서 푸르고 누런 보리 이삭의 물결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수없이 밀려오는 봄바람 소리에 실려 오는 것은 어릴 적 배고파하며 이 땅에서 함께 뛰고 살고파하던 그리운 친구들의 얼굴이며 사랑으로 고픈 배를 채워 주시던 동네 어르신들의 정겨운 모습은 아름다운 추억이고 그리움입니다.


우리에게 ‘보리’가 주는 느낌과 의미는 남다릅니다. 가난의 기억과 극복의 삶, 그리고 도심에서 찌들린 사람들에게 향수를 가득 불러일으킵니다. 어린시절의 풍경을 떠올리면 음메~~하는 소 울음과 쟁기질, 느티나무, 시냇물 등등 그 풍경화가 참으로 아름답게 그려집니다.

옛말에 “수구초심”이라 하였습니다.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바르게 하고 죽는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사람이 근본을 잊지 않는 마음을 일컫기도 합니다.


어릴 적 할머니는 굴렁쇠를 굴리며 마을을 돌고 돌아다닌 후에 헐떡이며 사립문을 들어서는 손자 녀석에게 “아서라,, 배 꺼질라 그만 뛰어라”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러시면서 부엌문 위에 걸려있던 삼태기에서 보리개떡 하나를 내어 주곤 하셨습니다.


저는 자상하시던 할머니가 그리우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그런 할머니를 그리며 먹거리 양식이던 보리가 이제 맥류 산업의 사양으로 구경거리로 변한 지금은 웃어른들의 사랑과 정을 나누며 화목하게 살아가며 한집에 몇 식구가 모여 살던 대가족 시절 그때가 아련히 생각납니다.


아무튼 그 어려웠든 시절이 가고 우리네 농민들이 잘 사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그런 보리에 대한 회상은 우리에게 많은 상징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직업을 초월하여 농촌마을로 다가서야 하겠습니다, 곡식도 사랑 없이는 성장하지 못합니다. 농부의 발길과 손길이 닿는 만큼 작물도 자라는 것입니다.


농촌이 커가는 그곳에 국민들의 애정이 함께 다가가기를 기대하며 농촌 발전을 기원합니다.

<기획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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