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연


7월초부터 여름방학 특강 계획표를 짜느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종이접기부 특강 일정이 여러 군데로 예정되어 있어서 달력을 책상앞에 두고 며칠 시간표를 짜면서 강의 일정표를 세웠다.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짜임새 있게 방학 일정표를 짜고 보니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빈틈없는 시간으로 인해 정작 점심시간이 빠듯했고, 집에서 아이들 점심 챙겨 줄 만한 여유가 없었다.

작년 겨울방학에는 어린이집을 병행하는 미술학원을 보내면서 급식비를 내고 두 아이들 점심을 해결했었다.

그런데 올 해는 어린이집 운영을 하지 않았다. 여름방학 전부터 며칠을 고민하다가 도시락을 싸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방학전날 도시락통과 작은 수저세트를 두 개 준비했다.

도시락을 싸는 첫 날 다른 때보다 일찍 일어나서 반찬을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처음 싸 주는 도시락이라 기분좋은 설레임으로 흥분되었다.

내 것도 도시락을 싸면서 잊어 버리지 않도록 가방을 챙겨 주었다.

나는 종이접기 수업을 마치고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집에서는 먹지 않던 반찬인데 밖에서 먹으니 훨씬 맛있었다.


나는 아이들 반응이 무척 궁금해서 학원에서 끝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가방을 휙 던지며 들어서는 아이들을 반갑게 맞으며 도시락을 확인했다. 빈 통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예전에 우리엄마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10여년전 ‘도시락 편지’라는 책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조양희 씨라는 분이 생각난다.

이 책은 말 그대로 도시락편지이다.


지은이의 세 자녀인 지호, 성지, 다위에게 보내는 엄마의 연서이기도 하다.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면서 작은 메모지에 쓴 엄마의 편지는 평상시 자녀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애정표현과 격려, 위로, 칭찬, 당부, 바람 등의 내용이 아주 짤막하게 적혀 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한 줄의 글, 단어 하나에 엄마의 애정과 염려가 진하게 묻어나고 사랑과 정성이 가득하다.


사실, 손이 많이 가는 도시락 그 자체만으로도 엄마의 사랑인데 거기에 편지까지 더했으니 더 말할 나위 없다.

지은이는 평소 아이들의 식습관과 몸 상태에 따라 세심하게 먹을거리를 배려하고 그 날 그 날 도시락에 담긴 음식에 대한 정보와 가르침도 잊지 않는다.


이제 겨우 두 번 정도 도시락을 싸면서 ‘도시락 편지’를 떠올린 건 ‘바쁜 아침 시간에 도시락 싸기도 바쁜데 어떻게 편지 쓸 시간이 있었을까’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사랑과 정성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고 누구나 이런 편지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엄마표 도시락이 건강한 아이들의 몸을 키웠다면 엄마의 편지는 아이들의 영혼을 더욱 살찌우고 빛나게 하지 않았을까?

내일부터는 한 줄의 글이라도 적힌 작은 메모지를 도시락과 함께 싸 주어야겠다.

반항이 조금씩 늘어나서 짜증부리는 큰 아이의 마음도 다독이고, 통통 튀는 공처럼 제멋대로인 둘째에게 어울리면서 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하루아침에 모든 걸 할 수는 없겠지만 사랑과 정성으로 한 걸음씩 아이들과 마음의 교류를 하고 싶다.

도시락을 남긴 둘째녀석에게 서운했던 엄마의 마음도 전해야지. 연애편지를 쓸 때 처럼 흥분된다.

‘내일 아침은 무슨 반찬을 만들까’ 저녁부터 행복한 고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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