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연


8월 중순을 넘어서도 계속되는 열대야로 인해 잠을 자지 못해 며칠을 수면 부족상태로 보냈다.

그러더니 날씨가 아침 저녁으로 급변하여 서늘한 가을 바람이 불었다.

덕분에 지난 토요일은 모처럼 늦잠까지 잘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집안일도 모두 끝내고 할 일도 없고 해서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큰 아들은 흥미 위주의 다른 영화를 보고 싶어 했는데 내가 우겨서 함께 보게 되었다.

[각설탕]은 어릴적부터 유난히 말을 좋아하는 시은과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말 ‘천둥’이의 우정을 그린 영화이다.

천둥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둘은 서로를 아끼고 따르며 성장하지만 천둥이가 다른 곳으로 팔려가면서 원치 않는 이별을 하게 된다.


그러나 가족과도 같은 둘은 서로를 잊지 못하고 2년이 흘러, 기수의 꿈을 키우던 시은과 운명적으로 마주하게 되고, 서로를 알아보며 감격적으로 재회한다.

영화를 보면서 말없이 주고받는 시은과 천둥의 기쁨과 슬픔의 교류는 나를 웃게 하고 눈물 흘리게 하였다.

영화 제목을 왜 [각설탕]으로 했는지 무척 궁금했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


‘각설탕’은 천둥이가 좋아하는 간식인데, 그 속에 시은과 천둥이 서로를 기억하는 소중한 마음을 담고자 했다.

영화가 끝나고 일상생활로 돌아 와서도 나는 [각설탕]에서 보여 준 시은과 말 ‘천둥’이의 소통과 진심어린 우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며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만남을 지속하는 친구가 떠올랐다.


학창시절 유안진 님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시를 주고받으며 시의 내용과 같은 친구가 되고 싶어 했다.

그 친구를 위한 시를 내가 직접 짓기도 하고, 고등학교때부터 진학의 길은 달랐지만 편지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나누었다.

그 때를 기억하면 말없이 서로를 보듬고 지켜봐 주던 둘도 없는 우정의 관계였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다른 친구들과 함께하는 모임에서 그 친구를 만나고 있다.

음성에 거주하면서 서로 바쁜 생활탓에 가끔 점심을 같이 먹는 정도이고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를 길게 나누어 본 적이 없다.

이야기 중에 간혹 서로의 허물을 드러내며 아픔을 표출해 보기도 하지만, 나는 좀 더 그 친구에게 솔직해 지고 싶다.

그런데 아직은 용기가 부족하다.

‘각설탕’으로 서로를 기억하는 시은과 천둥의 관계처럼 나와 친구의 우정을 생각하며 유안진 님의 ‘지란지교를 꿈꾸며’의 첫 구절을 조용히 읊어 본다.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며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않을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비오는 오후나 눈내리는 밤에도 고무신 끌고 찾아가도 좋을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열어보일수 있고 악의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행복해 질수 있을까 영원히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돕는 진실한 친구가필요하리라.>

 

<가섭산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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