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희

김진희
김진희
 

서점에서 책을 고르다가 산문집인 『두부』가 눈에 띄었다. 주저할 것 없이 구입했다. 책의 제목이 두부라는 사실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두부에 대한 나의 사랑은 끔찍하다. 장에 가면 먼저 찾는 것이 두부이고, 장을 보는 동안에는 모양이 눌려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여 신주 모시듯 한다.


언제부터 두부를 끔찍이 여겼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스무살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 당시 자취하는 친구가 있어 밥을 해 주곤 하였다. 밥 상 앞에서 행복해하는 친구의 모습이 좋았고, 또래에 비해 음식을 할 줄 아는 것에 뽐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어느 날 친구가 한 가지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이 가장 많은 것은 계란이라며 자취생에게는 최고라고 말했다.


나는 친구의 말에 손사래를 치며 두부가 제일이라고 했다. 친구는 아니라며 계란으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줄줄이 늘어놨던 것 같은데, 나는 고작 두부 부침과 두부찌개 두 가지만 말하며 고집을 부렸다. 어떻게 두부가 제일가는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는지 이 또한 기억이 나지 않으나 두부의 맛을 처음 알게 된 때는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예닐곱 살 때이다. 한 지붕 아래 세 가족이 살았고, 우리 집은 방 한 칸과 부엌이 전부였다. 단칸방의 기억이 초라할 법도 한데 나는 옛집을 아늑한 향수로 남겨 놓았고, 잊지 못하는 두부의 맛도 그 집에서 먹어 본 것이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두부를 부쳤다. 오빠와 나는 봉당에 앉아 어머니가 날라다 주는 두부를 먹었다. 어찌나 빨리 먹었던지 어머니의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했다. 저녁 무렵이었는데 참으로 먹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어머니는 내가 아홉 살 되던 해에 돌아 가셨는데 어머니께서 해 준 음식으로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내가 끓이는 찌개에 두부는 빠지지 않는다. 김치찌개는 물론이거니와 돼지고기를 석둑석둑 썰어 넣고 끓인 찌개도 그렇고, 해물탕에도 잊지 않는다. 그런데 손이 커서 큰일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도 불구하고 한 모를 다 넣지 않는다. 사분의 일은 찬물에 담가 냉장고에 보관한다. 그리고 유독 하늘이 가까워 보이는 해거름에 남겨 놓았던 두부를 꺼내 기름에 부쳐 밥 상위에 올린다.


고소한 맛이 기름에 묻어 심심하게 퍼진다. 솔직히 고소한 맛보다는 두부에 흥건히 배어 있는 물맛을 좋아한다. 한 입 베어 물고 입 속에서 꾹 누르면 새어 나오는 물기. 한입한입 씹을 때마다 목을 타고 흐르는 물맛에 모정이 닿지 않아 사막이 된 가슴이 젖어 오는 착각에 빠져드니, 이쯤하면 두부에 대한 나의 사랑은 끔찍하기보다는 측은하다는 말이 맞겠다.


어머니의 모습은 잘 생각나지 않는데도 두부를 보면 쉽게 어머니가 떠오른다. 어릴 적 먹었던 음식이 강한 인상을 남겼으리라고 짐작이 드니 욕심이 생겼다. 자식을 기르게 되면 좋은 음식만 해 주어 오래도록 기억 하게 해 주리라.


어떤 음식을 해줄까하는 상상을 한다.

묵정밭 한 뙈기라도 장만하여 손수 기른 농산물만 먹게 해 줄까. 우선 마당이 있는 집에 살면서 한구석에 가마솥부터 걸어 두어야겠다. 봄이 오면 쑥버무리를 찌고, 여름에는 옥수수를 가을과 겨울에 고구마를 삶으면 먹을거리로 풍성하겠지. 명절에는 엿을 고고 떡집에서 뽑아온 가래떡을 곁들어 줄 생각에 미소가 번진다. 불을 지필 때에는 번거로워도 한복을 입어야겠다. 한복을 입고 가마솥에 불을 지피던 어미를 곱게 기억해 주면 더한 기쁨이 있으랴.


이런 상상들로 한나절을 보냈다. 그런데 상상의 골이 깊어지니 근심이 생긴다. 내가 늙어 흙 보탬을 하게 되면 아이는 장성한 후라도 가끔은 어미를 그릴 것이고, 어릴 적 먹던 음식도 생각 날 것이다.

좋은 음식만 해 주었던 모습이 자식에게 깊게 새겨져 그리움을 안고 살아간다면 어쩔 것인가. 가마솥에 불을 지피던 어미의 모습이 그리워지면 무엇으로 마음을 다독일거나.


다행인지 나는 어머니께서 해준 음식 중에서 두부 부침밖에 기억하지 못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인 것에 위안을 삼는다.

그러면서도 두부를 보면 가슴이 허전해지는 까닭은 모르고 있다.

 

<가섭산의바람소리>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