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정
오늘에서야 버리는 일이 끝이 났다.
이 일은 B선생님의 버려야 한다는 강의를 들은 다음날로부터 나흘간의 작업이었다.
오래되고 낡은 물건들이 많으면 그것에게서 나오는 나쁜 기운이 사람의 정신과 육체, 그리고 감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건들도 서로 바람이 드나들 틈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좋은 기운이 도는 것이며 틈새가 없이 빼곡하면 그 기운을 막아버려 집안에 나쁜 작용을 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다. 언제 집안을 치워야지 하면서도 선뜻 시작을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곳곳이 눈에 거슬리는데 정리를 해야지 하면서도 게으름을 피우며 미루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내게 선생님의 말씀은 따끔한 일침이었다.
버리기는 그이 몰래 시작해야 하는 은밀한 작업이어야 했다. 무엇을 버릴 때마다 버리는 것만 좋아한다며 잔소리를 하고 방해를 하기에 말이다. 그이는 아무것도 못버리는 사람이다. 아무리 작아져서 못입는 옷이라도, 해져서 지저분한 이불도 버리면 무슨 일나는 줄 안다.
다행이 늦게 귀가를 해주어서 순조로운 일정이었다. 내가 퇴근해서 해야 하니까 하루하루의 계획을 세워야 했다. 먼저 입구에 있는 신발장이 첫 시작이었다. 식구는 셋인데 신발은 왜 그리 많은지. 겹겹이 포개져 짓눌려 있는 신들을 꺼내 놓으니 산더미다. 이렇게 많은 신발들이 저 공간속에 다 들어가 있었다는게 놀라울 정도였다. 옆구리가 터진 운동화와 끈이 떨어진 슬리퍼. 무슨 미련으로 이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을까. 가득한 바구니의 무게가 무거워 간신이 버리고 오는데 속의 기관과 감관들을 다 깨끗이 씻어낸 느낌이었다.
둘째날은 안방과 아들방으로 이어졌다. 아들이 고등학생인데 중학교 참고서가 많이 남아 있다. 책장에는 책들이 자리가 비좁다고 아우성치는 듯 했다. 글을 쓴다는 사람에겐 책이 많아야 재산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욕심을 내어 모은 것이 지금은 포개어 쌓아두어야 하는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너무 오래되어 누렇게 변한 책들. 다시 볼 것도 아니면서 꽂아두어 먼지가 수북한 책들을 가려 놓았다. 필요하다고 생각한 책만 남겨두니 헐렁하여 여유가 있어 보였다. 헤아려 보니 300권은 됨직하다. 어떻게 날라야 할지 잠시 아득했지만 내게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와서 층계를 십 수번 오르내릴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마지막인 오늘은 옷장과 이불장 순서이다. 땀에 얼룩이 져 흉한 베게는 가차없이 내던져진다. 이제 나는 버릴수록 점점 집착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쓸모없는 것들이 많은건 집만이 아니었다. 움켜쥐고 있었던건 신발뿐이 아니었고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건 헌옷만이 아니었다.
집안의 못쓰는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내마음에 헝클어져 있는 시기와 편견이 버렸다. 내 마음대로, 기분대로, 내 감정대로 잣대를 재고 있었던 거다. 누렇게 변한 책을 보면서 누런 내 양심을 보는 듯 했고 이 빠진 그릇을 보면서 나의 모난 성격이 보였다.
비워야 할건 정작 내 안에 더 많음을 본다. 법정스님은 ‘무소유’에서 난 화분을 버리고 홀가분해진 것처럼 나도 버리고 나니 홀가분해진다.
버리는 일이 마음까지도 가벼워 질 수 있음을 안것도 이 작업에서 내가 얻은 소득이다.
끝으로 몇 채 남은 이불을 버리려고 재활용장으로 가는 길에 그이의 차가 들어온다. 마지막 순간에 정면으로 마주쳤다.
완전히 은밀한 작업일 수 있었는데....... 내 손에 들려진 이불을 본 그이는 “또 뭐야? 버리는데는 선수지” 하며 검열이 시작된다.
낡은 이불을 집어들고 버리지 말라는 말에 다 떨어져서 못쓴다고 큰소리로 제압해 버린다.
그러나 이불 두 채에서는 그이가 물러서지 않아 내가 양보하고 말았다.
무슨 여자가 그리도 버리는걸 좋아하는지 모른다며 있는대로 핀잔을 주어도 나는 기분이 자꾸만 날아오르고 있으니 이 마음을 그이는 알까?
<가섭산의바람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