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희

 


달력의 날짜를 짚어보니 시집을 온지 열 달 하고 열흘째 되는 밤입니다.  그 사이 설날도 있었고, 요리책을 찾아가며 차렸던 잔칫상으로 시댁 어른들께 따뜻한 진지를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남편의 선배들이 찾아와서 새벽까지 술안주를 만들다가 혼자 잠이 든 날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전날이었습니다.


결혼 전부터 부부싸움이야말로 불필요한 것이라 생각했지요. 그렇기에 싸움을 피하는 방법으로 내 생각보다는 남편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의 결혼 생활이 흘렀을 때 주위 어른이 지나가듯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처음 5년 동안에 많이 싸워라. 중년이 되어서 싸우기 시작하면 답도 없다.” 이 말에 참기만 하던 나의 귀가 뻥 뚫리는 것 같았답니다. 그리고 용감해 졌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말다툼도 크게 확대되면 어쩌나하는 생각에 피하려고만 했었는데, 그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이지요. 그 후로 남편의 생각이 나와 달랐을 때 그에게로 향하는 내 목소리는 똑똑 부러지며 카랑카랑해졌습니다. 커진 내 목소리로 인해 부부싸움이 잦고 혼자 있게 되니 이것이 독수공방의 서곡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심하게 말다툼을 한 밤이었답니다. 남편은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 와 마시며 내게 먼저 자라 말했습니다. 대꾸 없이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불 속에서 속이 상해 어깨를 들썩거리는 동안에 남편은 술 한 병을 비우고, 밤바람을 쐬고 왔습니다. 그런 그에게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해버렸습니다.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밤에 나는 빈자리를 서너 번 쳐다본 뒤, 눈꺼풀의 무게에 무너졌습니다. 아침이 밝아 있더군요. 현관으로 가 보니 신발은 그대로였습니다. 글 굴(서재를 우리 집에서 는 이렇게 부른답니다) 앞에 서서 귀를 기울이다가 방문을 열었지요. 이부자리라고는 잠바 한 벌이 전부인 사내가 자고 있습니다.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봅니다.


하나 두울 셋 눈가를 지나가는 엷은 가닥이 보입니다. 아직은 흐린 주름에 지나지 않지만 어제 일이 미안해서 마음이 쓰입니다. 손으로 얼굴을 감싸주려다 그냥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차츰 눈가가 흐려지면서 문득 어린 시절 동무들과 같이 하던 놀이가 떠올랐습니다.


동네 개울가에 돌멩이를 널찍하게 깔고 동무들과 누웠습니다. 벽지는 듬성듬성 난 풀과 하늘 속 구름이 고작이었지만 코흘리개들에게는 손색이 없는 집이었답니다. 밥은 흙으로 짓고, 풀을 뜯어다 돌멩이로 즙을 내어 국을 대신하고, 찬은 망초대의 꽃을 따서 계란 부침이라 하며 상을 차렸습니다. 냠냠 소리를 내 가며 먹는 시늉을 하고, 까르르 배를 잡고 돌멩이 방에 뒹굴면 저녁 해가 지는지도 모르던 시절이었지요.


아침밥을 먹은 녀석들은 너나 할 거 없이 소꿉놀이 기구를 들고 개울가로 모여들었고 엄마 역, 아빠 역, 아가 역으로 역할을 나눌 때는 간혹 다툼도 있었지만, 역할 분담이 끝나면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히 놀이를 이끌었습니다. 퇴근한 남편에게 ‘이제 오세요?’라며 인사를 건 내며 생글대던 얼굴이 까맣던 미화, 아가 역을 맡으면 늘 배가 아프다며 징징대던 도시에서 이사 온 친구 희영이. 소꿉놀이는 마롯 인형(바비 인형)이 동네에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에게 인기가 좋았던 놀이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음식을 만드는 일이 아니면, 집에 손님이 오거나, 아가가 아파 병원을 찾게 되는 일이 반복되던 단순한 놀이였습니다. 하지만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은 하지 않았고, 한 동무만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내 입장만 고집하여 이불대신 잠바를 걸친 채 자고 있는 남편의 얼굴 위로 어릴 적 동무들과 하던 소꿉놀이의 장면이 오버 랩 되며 가슴 속으로 들어옵니다.

그이가 일어나는 대로 손을 잡고 동네 개울가에 가 볼까 합니다. ‘낭군님 그만 일어나시와요.’ 코멘소리를 혼자 해 봅니다.

 

<가섭산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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