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화폐인 달러에는 하나의 일화가 담겨 있다. 1792년 미국화폐제조법이 통과되고 달러화를 만들 당시, 미국의 지도자들은 돈은 눈에 보이고 하느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사람들이 하느님보다 돈을 더 좋아하리라 보았다. 그리하여 하느님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달러 뒷면에 ‘ln God We trust’(우리는 하느님을 믿는다)이란 문구를 새겨 넣었다고 한다. 돈은 우리의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행복을 가져다주는 우선적인 요인은 아니다. 타임스지의 연구 결과를 보면, 행복을 주는 요인으로 돈은 14위였으며, 애정이나 자유, 유머 보다 훨씬 그 순위가 낮았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왜 버핏은 300억 달러가 넘는 거금을 쾌척했을까?’라는 주제로 워런 버핏을 분석하였는데, 결론은 ‘행복해지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 신문은 버핏이 “천국으로 가는 여러 가지 길이 있지만, 이 길이 가장 큰 길이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6살 때 아버지인 하워드 버핏이 개설해준 통장의 20달러가 120달러가 되기까지 5년이 걸리는 것도 체험한 버핏 이지만 행복해지기 위해서 전 재산 440억 달러의 85%(약 35조원)를 사회에 기꺼이 희사한 것이다. (글쓴이 미상)

 

이렇듯 우리 주위에는 불우한 이웃을 도움으로써 생애 최고의 보람을 만끽하는 분들이 적잖이 있다. 그 분들로 인하여 세상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인감을 위조하여 수 만여 평의 종토를 팔아먹었던 집안사람들과 평생을 싸우다 끝내 원상복구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뜬 K씨의 선친 묘. 당시에는 묏자리로서 크게 부족함이 없었으나 묘 앞에 마을이 생겨나고 도로가 높게 개설되면서 바뀐 지형 변화로 앞은 막혔고 상대적으로 지대가 낮아진 묘지는 답답하기 까지 했다. 가끔씩 1남2녀의 꿈에 보이곤 하던 선친은 이때부터 수시로 3남매에게 나타나셨다.

 

큰딸의 꿈에 나타날 때마다 입고 계시던 깨끗한 옷은 어느 해 부터인가 시커멓게 헤지고 남루했으며 얼굴은 삐쩍 마르고 앙상한 몰골로 변해 있었다. 잘 하시던 말씀 대신 근심에 차 화가 난 표정을 짓곤 하셨다. 그 무렵 아들과 며느리도 꿈에서 선친의 초췌한 모습을 보게 된다. 현명했던 부인은 ‘아무래도 아버님 산소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한번 확인해 보자.’며 남편을 졸랐다. 그러나 이를 묵살해 오던 어느 날, 가족들은 선친의 기일(忌日)을 맞게 된다.

 

제사상 앞에 꿇어 향에 불을 달리는 순간, 휴대폰이 울리자 회사에서 급한 연락이 오기를 기다려 왔던 김모씨는 휴대폰을 받으러 달려갔다. 그 당시 회사는 재정과 경영상 문제로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휴대폰을 들고 건너 방으로 간 김모씨는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생각도 잊고 통화에만 몰두해 있었다. 한 시간 가량 계속된 통화가 끝났을 때는 이미 제사 음식은 다 식어 있었고, 꽂아 놓은 향도 재만 남아 있었다. 다시 제사는 시작되었으나 김모씨의 머릿속은 내내 회사의 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제사를 마치고 잠을 자던 김모씨는 꿈을 꾼다. 방문을 사정없이 열어 제친 선친은 한동안 가족들을 노려보더니 ‘배가 너무 고프다.’는 말과 함께 방바닥에 ‘쾅’소리를 내며 쓰러지셨다. ‘쾅’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부부는 그날부터 이유 없는 부부싸움을 한 달 내내 했다고 한다. 제사 음식을 얻어먹기 위해 이때나 저때나 기다리고 있던 선친은 제사를 지낼 생각은 않고 계속 통화만 하는 아들을 기다리다 못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지친 몸으로 그냥 돌아갔던 것이다.

 

선친의 묘 감정을 받고 나서 이장 날짜를 잡는 과정에서도 곡절이 많았다. 인감 도용 문제로 선친과 원한을 샀던 집안에서 선영으로 선친의 묘소를 옮기는 것도 문제를 삼았다. 이런 저런 일로 선뜻 날짜를 잡지 못하고 있던 그때, 선친과 가장 영적인 교류가 많았던 큰딸은 ‘빨리 옮겨 달라’는 강한 메시지를 꿈속에서 받는다. 이에 힘을 얻은 3남매는 날짜를 정했고, 지친 큰딸이 방에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인 비몽사몽(非夢似夢)간에 ‘아이고 귀여운 내 새끼들, 네가 수고했다.’시며 선친이 어깨를 쓰다듬으며 엉덩이를 두 번‘툭툭’쳤다. 깜짝 놀라 일어나니 분명 잠이 든 것도 아닌 생시가 틀림없었다. 선친으로부터 칭찬을 받자 가족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선친의 13년 된 유해를 길지에 평안히 안장해 드릴 수가 있었으며 그 보람도 여느 가정보다 컸으리라.

 

<재미있는수맥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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