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 김동길,노인회장 지찬영,새마을지도자 장기봉 여 서춘란,개발위원장 김태수,총무 김정길

소이면 중동1리 마을전경
소이면 중동1리 마을전경
 


음성읍에서 괴산군 불정면으로 향하다 보면 소이면 중동1리가 눈에 들어선다. 중동 1리는 애국지사가 많이 배출된 충절의 마을이다.

본래 충주군 소파면 지역으로 소파면 사무소가 있었고 소파면 중심지라해서 소파 또는 중동이라 하였다.

중동리(중동지역)은 충원(충주)현에서 남쪽으로 50리 거리에 있으며 호수 155호, 남자 394명, 여자 359명이라 기록되어 있다.


1914년 5월 19일 도령고시 제 29호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오상동 중동1리.2리.3리. 4리. 5리. 갑산1리 일부와 괴산군 불정면의 문등리 일부를 병합하여 중동리라 해서 음성군 소이면에 편입 되었다.

해방직후 1945년 11월2일 법령 제21호에 의하여 일제 총독부 지방관제를 그대로 이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0년 중반까지 1일과 6일에 장이 섰으므로 장터거리 또는 장터라 불리고 있지만 현재는 장이서지 않고 있다.


□ 마을 및 당의 위치


한내마을의 당은 서낭나무인데 수살 막이로 마을입구 다리 건너 길가에 두 구르가 서 있다.

예전에는 버드나무였는데 현재는 아카시아 나무로 높이가 약 10m 정도 된다.

도로 및 도량 공사시 이전 하려 하였으나 마을 주민의 반대로 현 위치에 서있다.


□ 서당고사의 연혁


한내 마을 서낭고사의 시작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옛날부터 지내왔다고 하며 한 해도 거른 적이 없다고 한다.

전하는 애기에 의하면 서낭고사를 반대한 집안에는 꼭 나쁘고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 제의 절차 및 내용


○ 제의시기

한내마을 서낭고사는 매년 정월 보름날 밤 8시경에 제를 올린다.


○ 제관의 선출

제관은 제일 사흘 전에 2인 (제주 1명. 축관 1명)을 선출하는데 제주는 생기복덕이 맞는사람 중 부정하지 않고 대길인 사람 중에서 택한다.

그리고 축관은 근처 마을의 사람이 담당한다.


○ 금기

제관이 선출되면 제관 집에 금줄은 치고 황토 흙을 대문밖에 좌. 우로 세 곳에 뿌려 놓는다.

그리고 서낭나무 에도 금줄은 두른다.

금줄은 왼 새끼로 꼬아 매듭마다 소나무 가지를 끼워 넣는다.


□ 3.1독립운동 추념비


1919년 4월1일 소이면 중동리 한내장터에서 대한독립만세운동 벌여  음성군내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속출했다

이날 만세운동을 주도한 애국지사는 김을경,이중곤, 권재학, 추성열, 이교필, 이용호열사이며 이과정에서 숨진 주민들은 안영열, 안인흥, 안효향, 유치수, 이태수, 권중전, 박낙범, 서홍기, 피춘호씨 등이다.


애국지사 의거를 기리 남기고 그뜻을 천추만대에 기리고자 충청북도와 음성군의 지원을 받고 소이면장을 비롯한 소이면 출신인 복지가 유족들의 성금으로 삼일독립만세 발상지인 한내장터에 3. 1 추념비를 건립하였다. 1981년 3월 1일 준공한 기미독립만세 의거. 한내독립운동 추념비는 이곳 소이면민의 거룩한 독립정신의 지주이자 애국의 전통을 이어주는 우리 민족의 상징이 되어 천추만대의 거울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권기홍 선생의 글을 추념비에 비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뜬구름 부는 바람 흐르는 물도 이곳에 멈추어 묵상할 진저, 눈 감으면 들려오는 그날의 함성 ,펄럭이는 태극기 절규하는 만세소리 국치의 울분을 드디어 폭발 하였으니 기미년 4월 1일 한내 장날에 구름처럼 모여든 군중들 손에 태극기 높이 들고 독립만세 외치며 왜적에 항거하니 아아- 그 의기도 장할 시고”

소이면 중동1리는 마을주민들간 인정이 넘치는 충절의 고장이다.


<취재/정진순 차장,김준선 명예기자>

 

<마을탐방/소이면 중동1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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