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전 청주고 교장, 칼럼니스트)

어디서 와서(生從何處來), 어디로 가느냐(死向何處去)는 인생의 숙제를 풀지 못한 채 산다는 것이 뜬구름과 같다(生也一片浮雲起)는 불가(佛家)의 말을 수긍한 채 불효자는 어머님이 떠나신지 여덟 번째 가을을 보냅니다.

 

천자만홍의 단풍이 온 산을 장식하고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인데도 해마다 이맘때면 불효자는 7남매를 키우시며 자식사랑에 쉬실 날(寧日)이 없으시던 어머님께 효도 한번 못해드리고 떠나신 후 이기에 불효부모 사후회(不孝父母 死後悔)가 되었습니다.

 

회남자(淮男子)에 ‘산다는 것은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것이고 죽는 다는 것은 본집으로 돌아가는것(生寄死歸)’이라고 했지만 80을 넘기시지 못하시고 떠나신 어머님께 새해 아침마다 오래 사시기를 빌며 신년인사 글씨를 써 올리던 불효자는 어머님께서 남기신 유품(遺品)중에서 학수천세(鶴壽千歲)라는 글씨를 발견하곤 목노아 울던 때가 어제 같은데 8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 세월의 흐름이 부싯돌 불빛 같다(石火光中)’고 했나 봅니다.

 

결혼한지 30년이 지나 아내의 음식 맛에 길들여져 있지만 중학교시절에 눈보라 치던 날 한금령을 넘어 귀가하면 어머님께서 챙겨주시던 된장찌개 맛과 보천역에서 통학하던 청주고 시절에 임시열차의 기적소리에  아침식사를 못하고 나온 아들에게 역(驛)까지 비빔밥을 갖고 오셔서 먹여 등교시키시던 어머님의 사랑과 그 비빔밥의 맛을 잊을 수 가 없습니다.

 

지주의 맏딸로 태어나시어 몰락한 양반가에 출가하신 어머님의 밤을 낯삼아 근검절제하며 살아오신 세월이 있었기에 저희들 7남매는 구김살 없는 어린시절을 보낼 수 있었고 가정의 소중함을 알고 자랐습니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고 하지만 낙엽 지는 이 가을을 보내노라면 어머님께서 저희들 7남매를 남겨두고 떠나신 계절이기에 살아계실 때 숙수지공(菽水之供)하지 못한 불효자는 가슴 절이며 이 가을을 보내는 가봅니다.

 

이제 단풍도 지고 저마다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나무들도 나목(裸木)이 되어 겨울을 맞고 어머님 유택(幽宅)에도 초겨울의 찬바람이 불어오겠지요.

 

어머님, 이제 모든 걱정 놓으시고 편히 쉬시옵소서. 어머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열심히, 그리고 건강하게 생활하며 이 가을을 보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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