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화

 

 

진홍색 장미는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노란 국화만이 나를 반긴다.

정자아래 통나무 의자를 옮겨 놓고 앉았다.

꼭대기부터 시작된 단풍이 등성이를 지나 산자락에 까지 내려와 있다.

그 아래 아담하게 서 있는 집도 오늘따라 더 애착이 간다.

내가 사는 집이기는 해도, 늘 맑고 정갈한 느낌이다.

집도 집이지만 주변에 어울려 있는 모습이 볼수록 아름답다.

시골집 분위기는 그대로 둔 채 불편한 점만 고쳐온 터이다.


허름하기는 해도 자연 속에 들어 앉아 있는데서 소박한 가운데 자연에 묻혀 사는 자신을 보기도 한다.

바람이 불면서 나뭇잎이 떨어진다. 그것을 보니 계절은 벌써 가을의 끝자락에 서 있는 것 같다.

아니 그와 함께 한 해가 저물게 되는 허전함이 엄습해 온다.

가을은 떠나는 계절이고, 그에 맞춰 나도 한 해를 정리해야겠다.

가을이면 숙제처럼 치르게 되는 감상도 이따금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계절병처럼 겪는 쓸쓸한 마음도 다시 찾아오는 봄이 있어, 그런대로 견디는 것 같다. 떠나기는 해도 다시 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시월의 풍성한 수확에 비하면 지금의 들판은 쓸쓸하기만 했다. 너무나 상징적인 마음에서 인생의 허무하고 덧없음을 생각해 본다.

시골로 내려오면서, 가깝게 지낸 이웃이 있었다. 시부모님이 사시던 지역이라 해도 어딘지 낯설었다.

그렇듯 어설픈 날들에 그 이웃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순박함 그대로인 사람들이다.

항상 흘러 가는대로 악의 없이 살던 사람이 간암이라는 몹쓸 병으로 저 세상으로 갔다.

언젠가는 한번 가는 인생이라지만, 너무 일찍 간 그분을 생각해 본다.

그렇게도 애틋하던 부인과 자식들을 두고 눈을 감기가 두려워 몇 번의 각혈로 몸부림치며 눈을 감았을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혼자 남은 부인은 오늘도 눈물 속에 지낸다. 해거름이면 마음이 스산해 온다고 했다.

낮에 사람들과 어울려 지낼 때는 모르겠는데, 밤이면 더 그렇다고 한다. 밤에 일어나 빈 집에 혼자 있는 자신을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단다.

금방이라도 자동차 불빛을 비추고 대문을 들어 올 것만 같다면서 자다가 몇 번이나 지나가는 불빛에 놀라고, 그때마다 들어오는 착각을 했다는 것이다.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는 터이지만, 어떻게 아픈 가슴을 쓸어 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떠한 위안도 애절한 속마음은 달래 질 수가 없음을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까웠다.

요즈음 그 부인은 직장을 나가고 있다. 아직 그럴 경황이 아닌데,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짐짓 택한 일인 것 같다.

어쨌거나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 무엇보다 다행이라고 생각 되었다. 더 살만한 나이에 떠난 남편을 생각하면 속상한 일이지만, 남은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을.

시간이 지나야 잊힐 일이거늘, 그렇게 자기를 달래면서 슬픔을 잊는다면 얼마나 좋으랴 싶다.


가뜩이나 스산한 그 마음에도 그리움이 낙엽으로 떨어질 테지. 그러나 낙엽이 진자리에 서설이 쌓이듯, 그 가슴에도 첫 눈 같은 포근함은 깃들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슬퍼하는 것도 아름답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것도 먼저 간 사람에 대한 지극한 애정의 표현 일 수도 있음이다.

어느새 해 거름인지 바람이 차다.


가뜩이나 스산한 가을, 오십을 갓 넘긴 저 사람도 사는 게 이 가을의 그것처럼 덧없음을 알게 될 날이 있을 줄 안다.

슬픔을 딛고 살아온 날들에, 언젠가 스스로도 뿌듯해 질 때가 올 것이다.

사는 건 어차피 허무한 거라고, 한 장 나뭇잎처럼 떠도는 삶이라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외로움을 더 큰 의지의 디딤으로 여기고 살 길 간절히 빌어본다.

 

<가섭산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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