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할 때 언제나 무릎을 꿇고 비석을 다듬는 석공이 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땀을 흘리며 묵묵히 비석을 깎고 다듬었다. 바닥에는 돌가루가 수북이 쌓여 뿌연 먼지가 날랐지만 석공은 아랑곳하지 않고 몇 시간 동안 무릎을 꿇은 채 일어날 줄 모르고 일에 열중했다. 며칠 뒤 다듬기를 끝낸 비석에는 석공의 명문(名文)이 새겨 넣어졌다. 그때 석공의 집 앞을 지나던 높은 관리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관리는 돌을 다루는 석공의 재빠르고 정교한 솜씨에 감탄하며, "나도 돌같이 단단한 사람들의 마음을 당신처럼 유연하게 다듬는 기술이 있었으면 좋겠소. 그리고 돌에 명문을 새기듯 사람들의 마음에 내 이름을 새겨 넣을 수 있었으면 좋겠소." 그러자 석공이 대답했다. " 그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 저처럼 무릎을 꿇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좋은 생각" 중에서-

컴퓨터도 없고 휴대폰 통화도 안 되는 강원도 화천에서의 2박3일은 불편했다기보다는 모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심신을 가다듬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주었다. 90년대, 축구 국가대표선수를 지냈던 H씨와의 인연 역시 조상이 맺어 준 인연이었다는 것도 이장(移葬)을 하면서 알았다. 산소를 감정하러 갔을 당시, 그곳에는 3년전에 중풍을 맞았다는 노부모와 이웃하여 살고 있는 숙부와 숙모의 냉랭한 표정은 나를 긴장케 했다. 20여년 동안 풍수를 익혀 온 숙부 앞에 불쑥 나타난 나는 숙부를 황당하게 했던 것. ‘슬하에 1남 4녀 중, 3년 전에 결혼을 하지 못한 외아들(37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바람에 숙부는 후사까지 끊겼던 것. 마침 당신의 눈과 실력으로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판단이 서지 않던 중인지라 함께 감정에 임하게 되었다.

증조부와 19세에 자식 없이 죽은 큰 증조모의 묘는 이북에, 집 뒷곁에는 친 증조모와 그 옆에 6년 된 할머니의 묘가 있었다. 멀리 떨어져있는 할아버지의 묘는 수맥을 피해 있어 그나마 다행스러웠으나 장례 당시 건수의 피해를 완벽하게 막을 수 있도록 조성을 했는지가 의문스러웠다. 6년 된 할머니의 봉분 흉부부위에 두 개의 수맥이 겹쳐 흐른다는 사실을 비로써 알게 된 숙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장 날짜도 잡았다.

1주일 후, 며칠 사이에 기온은 곤두박질 쳤으나 다행히 비나 눈이 온다던 날씨는 잘도 참아 주었다. 봉분은 헐리고 횡대가 걷히기 전 까지만 해도 잘 하는 건 지, 잘못하는 건 지 판단이 서지 않던 가족들은 미리 설명했던 그대로 드러난 흉측한 몰골을 보고서야 자신들의 용단이 옳았음을 기뻐했다. 십(十)자 수맥으로 드나들던 물에 의해 푹 꺼진 흙을 걷어내자 6년 된 할머니의 유골은 너무도 심하게 상해 있었다.

초겨울 치고는 제법 많은 양의 비가 새벽부터 줄기차게 내리던 둘째 날. 불편하기는 했으나 작업에 큰 지장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50년 된 증조할머니는 무릎 부위에 수맥이 흘렀다보니 그런대로 양호한 편이었다. 명당의 조건에는 ‘자손들의 정성’또한 좋은 땅 못지않다. 이북에 있는 묘를 돌봐 드릴 수는 없으되 혼백(魂魄)만이라도 후손들 곁으로 모셔야겠다는 효심으로 돌 판자로 증조부와 큰 증조모의 위패(位牌)를 만들어 나란히 모셨다. 그날,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난생처음 가족들은 그동안 각자에게 쌓여있었던 불협화음을 허심탄회하게 논했고 이날 이 시간부로 서로의 허물을 덮기로 하는 등, 화합의 장도 마련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보물을 갖고 계신지는 몰라도 묘지를 감정하던 날 부터 자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자손들에게 목걸이와 반지를 끼워 주기 시작하던 할머니는 이장을 한 지 훨씬 지난 최근까지도 보물 상자를 들고 다니고 계시다고. 그런데 단 한 번도 꿈을 꾸지 못하고 보물도 못 받은 자손이 있었으니 바로 3남인 H씨. ‘나한테는 할머니가 한 번도 안 찾아오신다.’며 은연중에 섭섭해 하던 그에게서 마침내 전화가 왔다.
아파트 초인종이 울려 문을 여니 ‘내가 너희 집에 처음 오는데, 맨 손으로 올 수가 없기에 선물을 가져왔다.’며 여러 개의 보석 상자들을 안으로 들여 놓으시더라고. 자신을 할머니라고 밝힌 여자는 생전에 보지 못한 젊은 여자였는데, 이장을 함에 있어 1등공신인 H씨에게는 애를 낳지 못하고 19세에 죽었던 큰 증조할머니가 보물 상자를 잔뜩 갖고 찾아오셨던 것은 아닌지 싶다.

<재미있는 수맥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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