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백야 3.98’ 등에서 중견배우로서의 물오름을 한껏 과시하고 있는 김영애.

그녀는 동기배우들이 하나둘 브라운관을 떠난 지금까지도 능력있는 커리어우먼, 기품있는 중전, 촌스러운 아낙, 억척스런 어머니 등 다채로운 배역들을 하나같이 자신의 삶인 양 깨끗이 소화해내며 시청자들에게 변함없이 사랑받는 톱탤런트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런 그녀가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온갖 고생을 다하며 살아온 여인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청자 앞에서는 그녀는 늘 반짝이는 톱탤런트이기 때문이다.

 

영도의 섬처녀에서 톱탤런트 자리에까지, 현대판 ‘신데렐라’로 살아온 그녀는 과연 전생에도 ‘신데렐라’였을까?

“법사님, 전 해보고 싶은 역이 딱 하나 있는데요….”

우연히 그녀를 만나 자리에서 김영애 씨는 어렵게 입을 뗀다.

“무슨 역인데요?” 필자는 이미 그녀의 대답을 알고 있었지만 부끄러움을 타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보기 좋아 넌지시 물어보았다.

 

“장희빈 역이요. 전 안 해본 배역이 없지만 딱 하나 장희빈 역을 못해봤거든요. 장희빈처럼 요염한 역을 꼭 해보고 싶었거든요. 제가 전생에 뭐였기에, 장희빈 역만 유독 맡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요.”

그녀가 장희빈 역을 맡고 싶어하는 이유를 필자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필자는 이미 그녀의 눈동자에서 품위있는 한 후궁을 만나 보았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 궁중 나인들의 손에 이끌려 집을 나서는 어린 소녀.

그녀가 바로 김영애의 전생이다. 주위사람들이 모두 궁중행을 말렸지만 이미 그녀의 마음은 굳어진 지 오래였다. 궐에 들어가면 이미 ‘여자’임을 포기해야 하며 평생 혼자 살 것을 각오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린 소녀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궐에 들어간 그 순간부터, 그녀는 혹독한 나인 생활을 하게 되지만, 5년 후, 임금의 여인이 되어 후궁의 자리에 오른다. 일개 나인에서 화려한 후궁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녀. 말 그대로 조선판 ‘신데렐라’가 된 것이다. 이제 남은 그녀의 소원은 단 하나 중전이 되어 보는 것이었으나 그녀에겐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후궁으로서 중전이 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그녀 역시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역학에 밝은 지혜로운 여인이었던 그녀는 중전이 되는 꿈을 조용히 접고 늘 바른말로 임금에겐 사랑받는 여인으로서, 다른 궁중여인들에게는 존경과 부러움을 받는 궁중여인으로서의 삶을 택하게 된다.

평소 ‘장희빈 역을 해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그녀.

아마 전생의 그녀가 후궁으로서 중전이 되어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1970년 대 대 히트작인 ‘민비’에서 ‘민비’를 맡는 등 궁중여인의 고위직(?)은 다 맡아본 그녀이기에 이쯤되면 전생의 한은 브라운관에서 다 풀린 셈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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