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옥

내일이면 아이의 개학날이다.

밀린 방학숙제 때문에 온 가족이 분주하다.

그날그날 계획표대로 숙제를 하면 좋으련만 마냥 놀기만 하다가 한꺼번에 하려니 마음만 급해서 식구가 초비상이 걸렸다.

며칠 전에 만들기 숙제를 해 놓았었다.


건조 시켜서 색칠만 하면 완성된다고 생각했는데 갈라지고 터져 큰 착오가 생긴 것이다.

눈사람은 하얀 지점토로 만들었었다.

남편은 거실에서 찰흙으로 표현한 눈에 흰색을 입히고 있다.

부산스러운 속에서도 남편의 자상한 모습을 보니 행복감이 밀려온다.

나는 찰흙 인형에게 옷을 입히는 중이다.


“엄마! 엄마! 이걸 한자로 어떻게 쓰지?”

아이의 급한 목소리다.

“진작에 좀 할 것이지, 여태 놀다 지금 와서 뭘 더 잘하려고 그래! 그냥 대충해!

나는 냅다 소리를 질러댄다.

밀린 일기를 오늘 다 써야 한다며 한자까지 섞어 쓰겠다니 좋은 소리가 나가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방학동안 신경 한 번 써주지 않다가 이제 와서 잔소리하는 어미가 더 잘못이지 싶다.


아이도 방학이 시작되자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많았지 않았을까.

서울 나들이도 가고 강원도 바닷가에도 방학 때 가보자고 졸라 댔었다.

야단은 쳤지만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이왕이면 좀 더 잘하려고 하는 아이가 대견스럽지 않은가.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남편이 손을 씻으러 가며 한마디 한다.

“이제 마무리가 되어 가니 대충하고 그만 자자.”


색칠은 마쳐야 하는데 시계바늘은 영시를 지나가고 눈꺼풀은 내려온다.

눈과 코를 그리고 찰흙인형 옷에 예쁘게 모양을 내고 끝마쳤다.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나니 나의 유년시절 방학생활이 떠오른다.

겨울 방학동안 얼음판에서 매일 살다시피 했다.

방학을 하면 서울 외갓집에도 놀러 가고 이모네도 가곤 했다.

두 달이나 되는 긴 방학이었는데 숙제는 늘 미루곤 뛰어 놀기만 했었다.

개학하루 전에도 다 못한 과제물을 부모님이나 나도 별 걱정 없이 가방을 챙겨 학교에 가곤 했던 걸 생각하면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지금처럼 아이가 한 둘이 아니라 사오남매씩 두었으니 부모님은 바쁜 일손에 자상하게 돌봐줄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건강하고 우애 좋게 잘 성장하지 않았는가.

어느새 아이는 편안한 얼굴로 잠이 들었다.

아이는 나중에 어른이 되어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추억할까.

 

<가섭산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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