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햇살인가 싶더니 갑자기 윙윙 소리를 내며 눈발이 날린다.

회색빛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고 바람은 소용돌이친다.

베란다 창문너머의 눈보라가 마음까지 흔들어 놓는다.

엊그제 까지만 해도 성큼 봄이 다가온 것 같았다.

가로수 벚꽃나무의 꽃눈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었다.


봄 햇살을 받으며 꽃을 빨리 피우려 설레는 마음이었을 나무, 어린아이가 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모습 같기도 했다.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 대학교 입학식이 시작되는 초봄을 바람이 시샘하는 걸까.

이맘때면 어김없이 꽃샘바람이 불어오곤 해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움츠리게 한다.

사람들은 오늘같이 햇볕이 나다가 눈바람이 불기를 반복되는 날을 변덕이 심하다고 한다.


정말 변덕을 부리는 건지, 아니면 무슨 요술을 부리기에 저렇게 햇볕이 났다가 눈보라가 치는지 모르겠다.

어찌 보면 이것도 하늘의 이치가 아닐까 싶다.

나는 추운 겨울이 빨리 지나가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과의 갈등이 유난히 많은 겨울이었기에 어서 봄이 오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무던히 집착을 했었다.

수십 번 마음을 가다듬고 다독이며 내 안의 겨울을 견디었다.

그런데 자연의 이치인 날씨를 보며 답을 찾는다.

갖가지 모양과 크기가 다른 나무들이 있듯이 사람들 역시 각자의 개성과 독특함이 있지 않을까.

나만의 생각을 고집하며 상대방은 인정하려 하지 않았기에 더 외로웠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따뜻한 봄이 쉽게 와 버린다면 봄을 기다릴 줄 모르듯, 인간관계에서도 갈등이 없다면 상대방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나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을 겪으면서 더 소중함을 알게 되지 않을까.

몇 차례 꽃샘바람이 불고 지나간 다음 맞이하는 봄이 우리를 더 기쁘게 해 주듯이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들 앞에서 한없이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한번 지나가 버리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다시는 봄이 오지 않을 듯 쏟아지는 3월 눈도 햇살 한줌이면 스스로 녹아 새싹을 키우는 생명수가 되듯 내 아픔을 통해 내면이 성숙하고 이웃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래본다.

바닷가의 조약돌들이 서로 부대끼며 예쁜 돌이 되듯이 이웃이 있어 나의 삶도 아름다울 수 있지 않으랴.

이제 좀더 마음이 큰 사람이 되고 싶다.

꽃샘바람은 어느새 잠잠해지고 따스한 햇살이 나를 비춰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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