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 신동조,노인회장 이중하,대동계장 오방선,새마을지도자(남)회장 이규식,(여)회장 정건진 총무 신승철,1반장 남기하,2반장 김만수,3반장 유근호,4반장 남궁영석

음성읍 석인1리 새말
음성읍 석인1리 새말

음성읍에서 목도(불정면) 방향으로 가다보면 철길옆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 바로 석인 1리이다.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 주미들간에 인정이 넘치고 있다.

마을 주민들간 화합과 친목이 두터워 마을 대소사에 마을 주민들이 모두 나서서 마을 일을슬기롭게 처리해 나가고 있다.


이런점 때문에 외지에 살다 이마을로 이사오면 마을 주민들속으로 하나가 되어 동화되는 마을이 바로 석인 1리이다.

그만큼 소위 텃새의 위력을 과시하지 않고 모두가 함께 보듬어주고 감싸주는 마을 주민들의 넉넉한 인심 때문이다.


□ 석인1리를 이끄는 일꾼들


그마을이 화합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마을 이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얼마만큼 마을 주민들을 위해 봉사할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는가가 중요하다.

모든 구성체에 있어 리더하는 사람이 사리사욕으로 물들으면 리더자에 대한 반감이 작용하고 그 구성체는 분열되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이런점을 너무 잘알고 있는 석인 1리 신동조 이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마을 주민화합과 마을 발전을 위한 일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주민을 위한 임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을 기하고 있다.


석인 1리 마을임원진은 이장 신동조, 노인회장 이중하, 대동계장 오방선 새마을지도자(남)회장 이규식, (여)회장 정건진 총무 신승철, 1반장 남기하, 2반장 김만수, 3반장 유근호, 4반장 남궁영석.


□ 연혁


본래 음성군 동도면의 지역으로서 사람의 모양을 한 자연석이 있어 석인동이라 하였고 1972년(고종9년)에 만들어진 “음성현지도”와 1912년 작성된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음성군 동도면 행정구역 명칭에서 지금의 석인리 지역인 석인동의 기록을 볼 수 있다.


1914년 5월 19일 도령고시 제29호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충주군 사이포면의 원충리 일부를 병합하여 석인리라 해서 군내면에 편입되었는데, 군내면이 음성면으로 바뀌면서 음성군 음성면에 편입되었다. 해방직후 1945년 11월 2일 법령 제21호에 의하여 일제 총독부 지방 관제를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1956년 7월 8일 법률 제393호에 의하여 면이 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음성읍의 한 개 리가 되었다.


□ 위치


석인리는 음성읍에서 동쪽으로 2km지점에 위치하며 동으로는 소이면 충도리,서로는 평곡리, 남으로는 충도리, 북으로는 비산리와 경계하고 있다. 석인리는 원충리, 새말이라 불리우는 2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 마을비 문안


단기 3090년(통일신라 경덕왕16년) 한주 중원경 흑양군, 음성현으로 기원하여 음성고을의 중심으로서 고을을 다스리던 곳이었다. 성터의 기록 역발골의 지명이 이를 입증한다. 또한 새말의 장승거리는 충청가도가 있었다. 뒷고개(모래재)를 넘어 충주에 이르는 교통의 요지로 주막 등 성시를 이루었다고 전함은 고을의 수부임을 확증한다.


이곳에는 조선 명종15년(단기3893) 향교가 창건되었다가 선조25년(단기3925) 임진왜란으로 관가, 민가와 같이 불타서 고을이 초토화되니 고을의 형세가 어려워 이웃 고을과 병합 복현을 거듭하다가 고을의 중심이 현 위치로 옮겨가니 인조25년(단기3980) 향교를 음성 교동으로 옮겼다.


참삼골 숭설고의 지명이 향교가 있었음을 증명한다. 음성의 석인(자연석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리와 충주의 원충리가 합병되니, 석인리의 돌석에, 원충리의 으뜸원을 따서 석인리라 이름지어 청용, 백호, 배산, 임수 뚜렷한 천혜적 터전에 자리한 마을이 조화 융합하였으니 아! 오묘하고 고귀하도다. 조상의 얼이 살아 숨쉬는 마을의 참모습을 바로찾아 이에 적어 세우노니 빛나는 전통과 값진 사적을 애정과 정성으로 잘 보전 전승하자.


□ 마을비현황


1996년 9월 27일 원충리 마을입구에 총 높이 280cm, 비신가로 85cm, 비신세로 115cm의 규모로 군비 100만원, 자부담 630만원의 예산이 소요되어 건립되었다. 기단부는 방형이고 비신은 화강암틀에 오석을 넣어 마을 유래를 기록하였으며 가첨석에 마을의 옛 지명과 위치가 각인되어있다.


□ 석인1리 원충이


석인리에서 으뜸가는 마을로 본래는 충주군 원충리 였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때 석인리에 편입되었으며 옛날 청주에서 충주로 통하는 길가에 위치하며 주막이 있어 성시를 이루었다 한다

▲모래고개: 원충이에서 소이면 비선거리로 가는고개

▲새봇들: 원충이 앞에 있는 들로 1950년 수해로 보를 새로 막았다.

▲세거리보: 원충이 동쪽 음성천이 합수하는 곳에 있는 보로 오리골 가섭산 수리봉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수한다.

▲악고개: 원충이에서 소이면 비산리로 넘어가는 고개 옛날도적이 많아서 행인들을 괴롭혔기 때문에 악고개라 부른다.

▲작구밭골: 원충이 뒤에 장구모양으로 생긴 밭이 있는 골짜기.


□ 마을 현안 사항


석인1리는 현재 57가구로 남, 여 각 100여명이 살고 있으며 원충이와 새말로 2군데의 자연 부락으로 이루워져 있다. 타 마을에 비해 인심 좋으며 단합이 잘 이루워져 살기 좋은 마을로 호평을 받고 있다.


2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진 석인1리는 양지바르고 인심 좋은 곳으로 주요 소득원으로 고추와 벼농사를 지으며 요즈음 점차 고령화 시대에 이르고 있지만 젊은 사람이 많이 편이다.


고향을 떠나 타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고향 주민들과 해마다 구정에 모여 윷놀이를 하며 대보름엔 마을주민들의 단합을 위해 연날리기와, 제기차기 등 을하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화합을 도모하고 있다.


<취재/정진순 기자>

 

<마을탐방/음성읍 석인 1리>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