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옥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남편의 손에는 까만 봉지가 항상 두어 개 들려져 있다.

때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보다 남편의 손으로 먼저 시선이 가곤 한다. 시어머니께서 주신 거라며 잘 삶아진 봄나물과 연두 빛이 나는 주먹크기만한 반죽덩이를 내게 내민다. 갓 나온 어린 쑥을 뜯어다 넣고 찧었는지 색이 그냥 먹어도 맛날 것 같다.

그뿐인가 비닐하우의 채소를 뜯어 깨끗이 씻어 보내 주시기도 하신다.  그래서 해마다 봄이 되면 더 바쁘시다.

자그마한 키에 작은 몸으로 산으로 들로 남보다 먼저 산나물을 뜯어 읍내 자식들 집으로 챙겨 보내주시는 그 정성, 지금은 알 듯도 한데 결혼 초에는 지나치게 신경을 쓰시는 것 같아 부담이 가곤 했었다.

칠순이 넘으셨어도 아직까지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텃밭 일구기 과일 나무가꾸기와 마을 회관 살림살이까지 시어머니의 몫이다.

동네의 이웃들도 음식을 위해서나 행사가 있을 때는 시어어니를 찾는다.

그 중에서도 칼국수를 밀어 동네 어른들이나 농사일로 바쁜 아낙네들을 불러 음식 나누기를 즐기신다. 그런 사랑이 사람들이 어머니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어느 할머니는 남편을 잃고 혼자되셨다. 가족이 없는 할머니는 매일 같이 회관에서만 지내신다. 그렇다고 남의 집 신세지기를 싫어하는 예의바른 분이시다.

무엇이든 맛난 것이 있으면 이곳으로 오셔서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신다.  할아버지는 부자이셨던 모양이다. 어려움 없이 사시며 육 남매를 낳으셨다고 한다.

부지런하기 소문난 할머니는 모양새는 거칠어도 인정 많기로 이름이 나 있었다.

회관 가까이 있는 시어머니 집은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이다.

길가 밭에서 일을 하다 한모금의 물을 마시러오는 이, 산나물을 뜯으러 오는 사람도 쉬어가는 곳이다.

얼마 전이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이사 간지 수십 년이 흐른 친척처럼 지내는 아저씨가 이곳 고향으로 내려와 살겠다고 한다.

몸이 늙고 아프니 별채라도 빌려 달라고 하며 잘 사는 자기 집보다 어머님이 더 편하신 모양이었다.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이가 왜 집을 나와 살겠다고 했는지 복잡한 세상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되고 싶은 마음에서 일게다.

작년 가을에는 김장 김치를 담그지 못한 가정에도 나누어주고 회관에서는 김치만두와 전으로 항상 찬치 분위기다.

그래서인지 마을 사람들은 시어머니를 좋아한다.

조금이라도 맛난 것이 있으면 곁에 분들 챙겨 주시는 시어머니를 누가 싫어하겠는가.

그런 것을 뵐 때마다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나는 가끔 시어머니를 생각해 본다.

남들에게 나눠주는 성격이나 습관은 타고 나는 거라고 하지만 때론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일가친척과 내 피 붙이에게도 잘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발 앞서서 남을 생각하고 위하는 그 마음은 쉽지 않으리라.

큰일은 아니지만 잔잔한 사랑을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동네 사람들에게도 나눔의 삶을 사는 시어머니를 닮고 싶다.

한 가족이 되는 인연은 하늘이 낸다고 했다.

필시 나는 애초에 이분을 닮은 며느리는 아니지만 이제는 서서히 시어머니를 닮아가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살고 싶다.  오늘은 또 무엇을 주실까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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