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

산을 오른다.

연록의 새순들이 옹알이가 한창이다.

갈참나무 밑에서 나는 더 지나 갈 수가 없었다.

묵은 잎을 아직도 떨구지 못하고 새순과 자리다툼 하는 소리가 괴성처럼 들여오기 때문이다.

새 잎눈을 본다.

묵은 잎을 살짝 피해 돋아나고 묵은 잎은 더부살이를 고집하고 있다.

하루만, 하루만 하는 미련은 치욕이란 이름으로 떨어져 땅에 뒹굴 것도 모른 체..........

나에게 티코가 있다.

내 것 이라고는 하지만 명예만 내 것 일뿐 나와는 무관한 차였다.

가족들이 번갈아 타는 바람에 내 차례는 늘 밀려나게 되고 이제서 늙은 애마로 돌아와 가족들 손에서 떠난 별 볼일 없는 차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차이다.

소형이라 불안하기는 하지만 냉, 난방이 잘되고 기름이 적게들어 부담이 없고 스노우 타이어라 빗길이나 빙판길에도 별고생 없이 타고 다닌다.

달챙이 호미처럼 소양스럽기 그지없다.

그런 차를 남편은 종종 폐차를 시킬 것을 종종 운운한다.

폐차라는 말을 할 때 마다 귓등으로 듣기 일쑤였다.

어느 주차장에서 “차도 꾸졌네” 라는 소리가 들여온다. ‘웬 바람소리’ 그저 스쳐 지나칠 뿐이다.

우리 집에는 짐을 실을 수 있는 따불캡과 코란도 스탈렉스 티코까지 있다.

이러고 보니 남편이 폐차 운운하는 것이 당연하리란 생각은 들지만, 내가 탈수 있는 영역은 티코 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늙은 애마로 돌아온 것이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긁혀도 부담스럽지도 않고 편한 마음으로 운전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엔진 소리가 끓어오른다. 숨찬 호흡을 하며 길을 걷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노화된 육신이 찔 뻑 거리는 소리는 호흡기에서부터 인지 걸을 때 마다 숨차하시던 어머니 모습과 티코의 걸걸 거리는 엔진소리가 애듀립 되어 내 가슴을 친다.

오늘 산책길에 아파트를 지나갔다.

새것처럼 보이는 물건들이 눈에 띄었다.

실생활용품에서부터 구두까지. 버리는 사람은 버릴만한 이유가 있기에 버렸겠거니 생각해 보지만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는 나는 무어란 말인가!

넉넉하지 못한 살림 꾸리기로 굳어버린 마음이 이제는 필요 없는 물건쯤은 버려도 되련만 굳은살을 도려내지 못하고 사는 사람처럼 끌어 않고 산다.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는 내병을 언제쯤이면 고치게될까?.

<가섭산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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