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회장 이권락,노인회장 임갑순,이장 김현구,새마을지도자 박우재,여회장 정부월,총무 서복래,1반장 라상영,2반장 남완우,3반장 박우재

소이면 비산1리 마을전경
소이면 비산1리 마을전경

 

 

가섭산자락 미타사,마을내 비석새마을 금고 등 주민 편익

 

 

음성읍에서 충주방향으로 36번 4차선 국도변을 달리다 보면 동양 최대의 지장 보살이 위치하고 있는 가섭산 자락의 미타사가 눈에 들어선다.

미타사 진입로에 위치한 마을이 바로 소이면 비산 1리이다.

마을 곳간에서 인심이 나듯 벼농사와 고추, 축산업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 많아 소득창출이 여타의 마을보다 많은 편이다.

소이면 비산1리는 현재 92호에 남자121명, 여자101명이 살고 있다,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는 비산1리는 뒤로 동양최대 지장보살성지인 대한불교 조계종 미타사가 자리하고 있다.

벼, 고추, 축산으로, 마을의 주요 소득원으로써 평온하게 살고 있는 비산1리 주민들은 비석새마을금고(이사장 최병태)를 이용할 수 있어 은행에 가는 불편을 덜고 있다며 고령화 시대를 접어들면서 마을에 현재 노인들로 밀집되여 살고 있는 실정이다.

 

□ 연혁

 

비산리는 본래충주군 사이포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의 통폐합에 따라 비석동, 조도리, 돈산리를 병합하여 비석동의 비자와 돈산리의 산자를 따서 비산리라 하여 음성군 소이면에 편입되었다,

옛기록을 보면 충원 현방리라 되어있어 현재 비산리의 일부인 조도촌리는 충주에서 서남쪽 50리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 위치

 

비산1리는 소이면 소재지 서북쪽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돈산리 (돌뫼)가 충주시와 경계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충도리와, 서쪽은 한 벌리와 북쪽은 중원군, 신니면과 경계하고 있다,

 

□ 마을명 및 주요지명

 

▲비선거리 : 비선거리는 비산리의 으뜸가는 마을로 음성읍 한벌리에 경계하고 있으며 비선거리(비석동)라는 마을명은 비선거리에서 중원군 신니면 화안리로 가는길이 있는데 그길에 비석이 있었으므로 처음에는 비석거리라고 부르다가 후에 지금은 비선거리로 부르게 되었다.

조선 말기에는 주막이 있었다.

▲안말 : 비선거리의 안쪽마을 마을회관이 있음

▲주막거리 : 비선거리의 도로에 접한마을로 옛날에 주막이 있었음

▲음애동 : 방죽안 서쪽에 있는 골짜기. 조선 중종때 좌참찬 이자 기묘사화로 파직되어 이곳에 살면서 골짜기에 있는 암반석위로 제실을 짓고 수업 하였다 한다,

▲방죽안 : 비선거리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방죽이 있었는데 그 안쪽이 됨,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

▲장자골: 비선거리 서쪽에 골짜기로 옛날에 양반이 살았다하여 장작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대추재: 방죽안의 앞번던 앞의 들, 대추나무가 많았음.

▲앞번던: 방죽안 안에 있는 버덩.

▲덕밭들: 비선거리 앞에 있는 들.

▲버들골: 비선거리 동북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뱀이 많았다고 함.

▲보들: 비선거리 남쪽에 있는 들.

▲불당골: 비선거리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불당이 있었음.

▲화상골: 비선거리 북쪽 미타사로가는 길가에 있는 골짜기로 마애불상의 아래의 골짜기므로 화상골 이라 했다고함.

▲수악미: 비선거리 동쪽의 진등 동남쪽에 있는들.

▲얼깅이: 비선거리 서쪽에 있는들.

▲장배미: 비선거리 동북쪽에 있는들.

▲진등: 비선거리 동쪽의 긴 등성이.

▲기운돌산: 미타사 서쪽에 있는산으로 가섭산 산맥이 동쪽으로 뻗어 뭉친산.

▲공기바위: 기운돌산에 있는 바위로 모양이 공기돌처럼 생김.

▲마당바위: 화상골에 있는 바위.

▲집바위: 비산리 북쪽 가섭산 중허리에있는 초가지붕처럼 생긴 바위.

▲생바위: 미타사 앞에 있는 바위로 일명 기차바위라고도 한다.

▲작은고개: 비선거리에서 석인리 새말로 가는 고개.

▲큰고개: 비선거리에서 석인리 원충으로 넘어가는 고개.

▲화산고개: 비선거리에서 충주시 신니면 화안리 화산으로 넘어가는 고개.

▲화상골 소류지: 화상골에 있는 연못으로 진등너머에 있는 농토의 농수로 이용한다.

 

□ 불도의 도량 미타사

 

1300년전 신라진덕여왕 8년 (630)년에 원호성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창건이후 고려시대 도선국사,무학대사를 비롯 조선시대 사대명사 등 여러 대덕스님들에 의해 몇차래 중건되었고, 조선 인조 14년 호란당시 각성대사가 의병 3천명(항마군)을 모집하여 호병을 물리친 공로로 나라에서 크게 중수하였으나 조선 영조 18년에 화재로 폐허가 되었다.

1965년 지금 주지이신 명안스님이 운수 행각중 대원력을 세워 극락전과 선원, 요사채, 대광명 사리탑등 지금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또한 통일 신라시대 석조좌불상과 고려시대의 마애불상(충북 유형문화재 제130호)등 성보문화재가 있으며, 2000년 10월 4일에는 동양 최대 지상보살성지로써 거듭나고 있다.

 

<취재/ 정진순 기자, 조승주 명예기자>

<기획탐방/소이면 비산1리>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