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득

며칠 전 일이다. 한 여인이 노인정을 들어온다. 할인 상품권을 보이면서 하는 말이 이 상품권을 가지고 내일 청주를 가면 강경 젓갈 대리점이 처음으로 개업식을 하니 많이 참석 해 달라고 한다. 거기다 점심식사와 재미있는 이벤트까지 있으니 이번 기회를 놓치면 후회 할 거라고 했다.

나는 청주에 자식들이 삼남매가 살고 있기에 만나볼 욕심으로 상품권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십 여 명의 할머니들이 상품권을 받은 것이다. 그 여인은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나갔다. 다음날 아침 약속 장소에서 관광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이상한 느낌에 상품권을 자세히 보니 지역 번호가 041이었다. 이곳은 충남이 아닌가. 깜짝 놀라 기사 분께 분명이 청주를 가느냐고 물어 보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날 상품권을 주고 간 여인은 마을마다 돌며 사십여명이 넘는 관광객을 확보를 해놓고 사라졌다.

버스 안에는 낯모르는 안내양이 마이크를 들고 있다. 노인들은 설레임보다 불안함이 영역했다. 관광버스는 음성에서 증평을 접어들자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질주를 한다. 왜 고속도로로 가느냐고 항의를 하자 그 제서야 충남 강경 본점을 가야만 상품권도 사용하고 선물도 받는다고 한다. 실망과 분노가 치밀었지만 절에 간 처녀가 중이 하자는 대로 하는 형국이 된 것이다. 계절은 봄이었지만 버스 안은 찬바람과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테이프를 틀기 시작 한다. 얼마 후 흘러나오는 노래가 내가 바보라는 노래였다. 겉 다르고 속 다른 당신 마음 주고 정을 준 게 내가 바보야 때는 이때다 싶어 안내양 마이크를 뺏어들고 그 노래 이 절을 따라 부르며 안내양을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더니 박수가 쏟아지며 박장대소를 하다 보니 버스 안에는 금방 웃음꽃이 피어났다. 어느새 부여와 논산 안내양은 백제의 시조 왕이 누구며 백제가 멸망 할 때 마지막 왕이 누구냐고 질문을 한다. 격동의 시대를 겪어온 할머니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굽이굽이 돌다보니 강경에 도착 한 것이다. 예고도 없던 장거리 여행이 된 것이다. 용돈이 풍족한 분들은 젓갈을 이것저것 사들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노인들은 젓갈 맛을 볼 뿐이었다.

약속대로 점심을 얻어먹었으니 우리는 다시 차를 타야만 했다. 창밖에 보이는 것은 숲을 허물고 들어선 고층 건물과 아파트 뿐 이었다. 두 시간 쯤 달려 간곳은 다름 아닌 사슴농장 그곳이 이벤트였던 것이다. 농장직원들이 당신들의 부모님 보다 더 반갑게 맞아주며 안내를 한다. 잠시 후 사장님이 나와 녹용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 그 해박한 지식이 어찌나 뛰어나던지 노인들은 넋이 나간 듯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듯싶다. 사장의 말이 더욱 걸작이다. 노인들이 죽고 싶다는 말과 노처녀가 시집 안간 다는 말은 거짓말이라며 여기오신 분들 중에 죽고 싶은 분은 한분도 없을 거라고 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 녹용을 사서 기를 보하시면 아픈데가 없어진다고 사설을 늘어놓는다. 그 유혹에 빠진 노인들은 녹용을 사기시작 하더니 순식간에 30여명이 넘는 분들이 녹용을 구입 한 것이다. 일인분에 16만원 이인분에 32만원 대강 따져도 약 8백만원이라는 금액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이 녹용을 드시고 정 해년을 맞아 만수무강 하라는 큰절을 올리자 노인들의 박수소리가 사슴농장 가득 울려 퍼진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했던가. 버스를 끌던 기사는 녹용을 포장 하는 솜씨가 프로급이었다. 그 농장에는 관광버스가 쉴 새 없이 나가도 들어오고 있었다. 다시 마지막 이벤트라는 희망을 걸고 버스에 오른 것이다. 찾아 간 곳은 인삼고장 금산 이었다.

수삼홍삼도 아닌 흑삼을 선전하는 곳이다. 지루한 선전이 끝나자 노인들은 흑삼액이라는 것을 또 사는 것이다. 그분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지만 하루 종일 빈손으로 끌려 다니던 노인들은 자존심이 무너지는 순간 분명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공연히 가슴이 시려왔다 그러나 지는 노을은 세상을 똑같이 물들이고 있다. 버스가 얼마를 달리더니 청주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날따라 청주가 왜 그리 멀고도 그립던지 무심코 꿈에 본 내 고향 이라는 노래를 부른 것이다. 누구를 원망하랴 한낮 휴지조각 같은 상품권에 잠시 눈이 멀었던 내가 바보가 된 하루였다.

이 세상에 재벌들이 녹용이 없고 흑삼 산삼이 없어 죽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했다. 어제의 일도 과거가 아닌가. 내 나이 일흔셋 이제야 말로 곱게 늙어 무덤 앞에 피는 할미꽃처럼 조용히 살아야 할 것이다.

<가섭산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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