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는 거만하다가 나중에는 공손하다, 상대편의 입지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상반됨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의 〈소진열전(蘇秦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소진(蘇秦)은 뤄양(洛陽)의 사람으로, 제(齊)나라에 가서 스승을 찾아 귀곡자(鬼谷子)한테서 학문을 배웠고, 유학하는 수 년 동안 많은 곤궁을 겪고 돌아왔다.

이때 형제, 형수, 누이, 아내, 첩조차 모두 그를 은근히 비웃으며 말했다.

“주(周)나라의 풍속(風俗)은 농업(農業)을 주로 하고, 상공업(商工業)에 진력(進力)하여 2할의 이익을 올리기에 힘쓴다. 그런데 당신은 본업(本業)을 버리고 혀를 놀리는 일에만 몰두했으니 곤궁(困窮)한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소진이 이 말을 듣고 부끄럽고 한심스런 생각이 들어 방문을 닫고 틀어박혔다.

그러던 중 주서(周書)의 음부(陰符)를 손에 넣어 탐독하였고, 1년이 지나니 남의 마음 속을 알아내는 술법을 생각해내었고, “이제는 오늘의 군주를 설득할 수 있다.”라 말하였다.

소진은 연(燕)과 조(趙)로 가서 제(齊), 초(楚), 위(魏), 한(韓)의 여섯 나라가 연합(聯合)하여 진(秦)에 대항하는 ‘합종책(合從策)’을 건의했다.

그래서 여섯 나라는 합종(合從)의 맹약(盟約)을 하고 힘을 합치게 되었다.

소진은 합종의 맹약의 장(長)이 되어 여섯 나라의 재상(宰相)을 겸했다.

북쪽의 조왕에게 경위를 보고하기 위하여 가는 도중 낙양을 통과하게 되었는데, 따르는 일행의 행렬이 임금에 비길 만하게 성대(盛大)했다.

주나라의 현왕(顯王)은 이 소식을 듣고 도로를 청소하고 사자(使者)를 교외에까지 보내 위로하게 했다.

이 때 소진의 형제, 처, 형수는 곁눈으로만 볼 뿐 감히 소진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소진이 웃으며 형수에게 말했다.

“전에는 그렇게 거만하더니 지금은 이렇게도 공손하니 웬일입니까?” 형수는 넙죽 엎드려서 얼굴을 땅에 대고 사과하며 말했다.

“계자(季子 : 막내아들)의 지위(地位)가 높고 재산이 많기 때문입니다.”

소진은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한 사람의 동일한 몸인데 부귀(富貴)하면 일가(一家)친척(親戚)도 두려워하며 공경(恭敬)하고, 빈천(貧賤)하면 가볍게 보고 업신여기니 하물며 세상 사람들이야 더할 것이 없겠구나. 또 만약 내가 낙양성 부근의 비옥(肥沃)한 옥토 2백 묘만 가졌더라도 어찌 여섯 나라 재상의 인수(印綏)를 찾았겠는가.” 그리고 나서 1천금을 뿌려 일족과 벗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 귀곡자(鬼谷子) :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사상가. 영천(潁川) ·양성(陽城)의 귀곡지방에 은둔하였기 때문에 귀곡자라고도 하였다.

진(秦) ·초(楚) ·연(燕) ·조(趙) 등 7국이 천하의 패권을 다투던 시대에, 권모술수의 외교책을 우자(優者)의 도(道)라고 주장한 종횡가(縱橫家)였다.

<서범석 해오름학원장의 한자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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