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득

어디서나 주름이 고운 분을 만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런 분을 만나면 세상 사람들을 다 감싸주고도 남을 것만 같은 푸근함이 느껴진다.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 보고 싶다. 내 맘속에 할 말은 묻어 놓고 주름이 고운분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향기를 음미하며 차 한 잔을 나누고 싶을 때가 있다.

얼굴의 주름은 그 사람의 성격과 인품을 그대로 함축시킨 그림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외모와 내면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얼굴에 주름이 단아한 인상을 주는 가하면 유난이 궁색해 보이는 주름을 보고 있으면 안타까움 마저 갖게 하는 얼굴이 있다.

풍요속에 얼굴이 곱다지만 과욕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 얼굴은 편안하게 보일 수 가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만족이란 없는 법이다. 어디까지가 만족인가 자체 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반면 물질은 빈약해도 언제나 긍정적인 얼굴에는 나이가 들어도 단아한 모습으로 보인다.

내 나이 육십 대에 만났던 이름 모를 할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대전에서 버스에 올라 둘러보니 낯모르는 할머니가 창밖을 무심이 바라보고 있었다. 은발의 얼굴에 주름이 어찌나 곱던지 그 옆에 앉아 보고 싶었다. 약 십분은 지났을까 가방에서 약을 꺼내 드시는데 얼굴이 조금은 창백해 보였다.

나의 목적지는 청주였다. 조급한 마음에 할머니께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 어디를 가시느냐고 하면서 연세를 물었다. 수줍은 낮달처럼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팔십 고개를 막 넘었다고 하더니 다시 침묵으로 창밖을 내다보시며 하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자기의 몫이라며 당신은 이번 여행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그 분의 단아한 주름이 마치 지는 저녁노을처럼 아름답고 평온해 보인다. 내가 늙어서 꼭 닮고 싶은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서글픔이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가슴에 쏟아진다.

하지만 내가 닮고 싶다고 그 어른의 모습을 어떻게 닮을 것인가 생각 없이 품고 있던 나의 욕심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 할머니의 주름은 나에게 돈으로도 살수 없는 교훈이었다. 나이를 먹으면 조건 없이 마음을 비우는 것과 겸손함을 가르쳐 준 것이다. 가시넝쿨처럼 엉켰던 삶이 아니던가. 신이 우리에게 너무 가혹한 시련으로 시험을 했던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것은 본인만이 알 수 있지 그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한 점 부끄럼 없이 누군가의 가슴을 아프게 한 적은 없는 듯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이제는 거울도 이따금 들여다본다. 흰머리에 얼굴에는 잡티와 주름만이 늘어가고 눈꺼풀은 왜 그리 처지는 것인가. 눈을 씻고 봐도 고운 곳이라고는 한군데도 없다. 한심하다 못해 연민의 정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내 얼굴에 주름은 진실과 성실이 살아온 연륜의 주름이라고 말 할 수 는 있다. 그런 것들이 뇌리를 스쳐가는 추억이 있기에 가슴을 훈훈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 아주 가끔은 뿌듯함과 그 속에 사랑도 있었으리라. 생각해 보면 실타래처럼 엉켰던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으니 그것은 젊음이 그립다는 뜻이 아닌가 싶다.

언젠가 텔레비전 화면에서 외국의 유명한 화가가 나와 하던 말이다. 연륜으로 빚어진 얼굴의 주름은 그릴 수가 있어도 과욕과 탐욕으로 변해가는 얼굴의 주름은 그릴 수가 없다고 했다. 그 말이 정답 인 듯하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 하라는 뜻일 것이다. 순리대로 살아온 주름은 인생의 여정에서 낱낱이 기록된 이력서가 아닌가싶다. 주름은 숭고한 자국이 되고 때로는 슬픈 흔적의 발자취로 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어느새 고희를 훌쩍 넘고 보니 이름 모를 할머니의 단아했던 주름이 생각난다. 그러나 그 주름은 흠모의 대상일 뿐이지 닮을 수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이미 얼굴에 조각된 주름일지언정 가꾸고 싶은 마음에 거울을 본다. 정신을 차리라는 듯이 심장이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아무리 충고를 해도 그것마저 나는 포기 할 수는 없다. 늙었어도 여자는 여자 이니까 나는 내 얼굴에 주름을 언제나 보듬고 사랑하고 싶다. 그것이 비록 나만의 욕심은 아닐 것이리라.

<가섭산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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