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명화

어느 날 갑자기 그 녀석은 요란스럽게 내게로 왔다.

샤워하다 귀에 물이 들어 간 이후 찌르는 듯한 통증으로 신호를 보내왔다.

우둔한 내가 감지를 못하자 며칠 후 본격적으로 마각을 들어냈다.

처음에는 수시로 들락거리며 내 귀에 붙어있다.

몸을 앞으로 숙이면 귀가 턱 막히면서 트럭 지나가는 소리를 내며 머릿속까지 헤집어 놓는다.

귀에 물이 들어가면 멍 할 때가 있는 것처럼 잠시 나타나는 증세인줄 알고 그놈이 나가기를 기다렸다.

간호사인 나는 환자의 말소리가 잘 안 들려서 상대방의 입모양을 집중적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허사였다. ‘정’인지 ‘경’인지 몰라서 이름을 몇 번씩이나 되묻기가 다반사였다.

급기야 손님들은 짜증을 내면서 귀먹은 사람 취급을 하는 것이다.

평소 때 같으면 농담으로 넘길 수 있었던 일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오후에는 원장님이 진찰하면서 환자에게 주사를 놔주라는 줄 알고 주사실에서 환자를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다시 진찰실에 들어갔다.

원장님에게 주사를 가지고 오라는 것을 잘못 알아들은 것이었다.

이대로 영영 안 들리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났다.

더 이상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맞서 싸우기로 했다.

아니 달랬다고 해야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약을 한 끼도 안 거르고 꼬박 먹고 귀에는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웠다.

차츰 찾아오는 횟수가 뜸해졌다.

그러나 약 부작용이 생겨서 양을 줄이니 기다렸다는 듯이 극성스럽게 또다시 덤비기 시작한다.

보름 정도 싸우다 보니 몸과 마음이 지쳐서 내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처음 보다 사납게 굴지 않으니 함께 살아보기로 했다.

남편한테도 동의를 구했다.

잘 못 듣더라도 구박하지 말아달라고.

귀가 닫히니 생각의 문이 조금씩 열렸다.

밀폐 되었던 방안에 쌓였던 먼지처럼, 내 마음 속에 켜켜이 쌓인 오만과 어리석음이 보였다.

병원에 오는 노인 분들은 말귀도 잘 못 알아듣고 실제로 안 들리는 분들이 많다.

어떤 분은 여러 번 언성을 높여야 접수가 끝난다.

진료실에서나 주사실에서 또는 처방전 줄때와 물리치료실 안내까지 몇 번을 반복해서 말씀드려야 한다.

이렇게 노인환자가 많은 날은 오후가 되면 목소리가 갈라지고 몸은 물먹은 솜이 되는 것이다.

평소에 노인을 내 부모처럼 생각하자고 마음먹지만 어느새 답답해서 목소리를 높인다.

동거하기로 마음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막에 고였던 물이 며칠 나오더니 꼬리를 슬그머니 빼는 것이었다.

한 달 여 만에 나를 괴롭히던 중이염과의 동거가 끝이 났다. 다시 찾은 고요한 세상이다.

노인들에게 짜증내고 불친절한 내 모습이 가관이어서 그놈은 내게 예행연습을 시켰나 보다.

노인들이 걸어가는 길을 미리 걸어보라고........

<가섭산의바람소리>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