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같은 교실에서 공부한 친구가 이사를 온지 일 년이나 되었지만, 마음과 다르게 만나기가 힘들다. 앉아있는 시간이 많은 우리는 운동을 하고 이야기도하기엔 등산이 적격이겠다 싶어 마안산으로 갔다.

 

퇴근 후에 서둘러 출발했지만 늦은 감이 있어 조바심했는데, 입구에는 여느 때처럼 주차된 차가 여러 대 있어 안심이다. 첫 번째 쉼터에 이르기도 전에 우리의 마음은 여고시절로 돌아갔다.

 

무심코 보니 쉼터의자에 이상한 것이 있다. 신문을 반듯하게 펴 놓고 그 위에 깨끗한 검정고무신과 작은 보퉁이 하나가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걸음이 멈춰졌다. 내 눈을 쳐다보던 친구가 결론을 내렸다.

 

 “이건 분명히 누군가 자살을 한 거야. 물에 빠져 죽을 때도 나 먼저 갑니다하는 표시로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잖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여기서 죽으려면 나무에 목을 매다는 수밖에 없겠다 싶어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보퉁이엔 무엇이 들어있기에 여기까지 끌고 왔을까? 앙다문 듯 매듭이 질기고 단단해 보인다. 주인모를 보따리를 커다란 미스터리로 안고 우린 그 자리를 떠났다.

 

서쪽으로 기운해가 나뭇가지 사이로 마지막 빛을 발하고 있다. 돋보기로 빛을 모아 신문지를 태우는 것처럼 동그랗게 이동한다. 흔하지 않은 현상을 보며 그 보따리의 주인이 알려야 할 무엇이 있는가 하는 이상한 생각을 했다.

 

마안산 정상에는 커다란 나무가 벼락을 맞아 등걸만 남았더니 그것도 썩어서 빈터가 된 곳에 누가 심었는지 꽃이 피어 있다. 과꽃, 사루비아, 분꽃, 채송화, 맨드라미. 백일홍…. 어릴 때 살던 집 화단에 있던 꽃들이다. 옛 꽃에 정은 가지만 어색하다. 꽃이 분위기를 탄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그저 있을 곳에 있어야 하는 모양이다. 집 꽃은 집 주변에, 고무신은 댓돌위에 보따리는 버스 정류장에 있어야 자연스럽다. 그런 고정관념과 배타적인 아집이 나의 발전을 저해시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친구와 나는 국민체조를 했다. 무릎에서 뚝뚝 소리가 나고 어깨는 반밖에 돌아가지 않지만 우린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고 우습게 여겨졌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약수터 쪽으로 하산 길을 잡았다. 약수터 쪽은 나무가 울창해서 여름에도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어두운줄 알았다. 길이 선명하지 않고 약간씩 드러났다가 흐려진다. 코앞에만 길이 있고 고개를 들면 없어진다. 도무지 현실이 인정되지 않지만 하산길이 밤이 된 것이다.

 

불빛 하나 없는 산속의 밤이 곤혹스럽다. 내 삶의 여정에서도 준비 없이 갑자기 어두운 밤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윤동주님은‘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라는 시에서 인생에 가을이 오면 자신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다고 했다.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열심히 살았느냐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었느냐고, 그리고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하고 말이다.

 

내 마음 보따리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차고 넘쳐 흘러나오는 것이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이었으면 좋겠다. 유인력의 법칙 이라는 것이 있다. 유유상종이라고 지금의 생각이 비슷한 것들을 끌어당기고, 지속적으로 생각하면 그것이 실질적인 사물로 변한다는 얘기이다. 내가 지금 행복하고 평온하고 활기찬 생각을 하면 그 비슷한 것이 자꾸 따라와서 결국 긍정적인 삶으로 바뀌는 것, 참으로 매럭적이다.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마음 안에 사랑과 감사를 담고 살았는가 내 보따리 안을 점검해 보아야겠다.

 

앞에 가는 사람은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고 뒤에 가는 사람은 쫓기 듯 급해서 발이 엉킨다. 어둡기 때문에 오관이 민감하게 작동한다. 잔잔한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미세한 소리까지 들린다. 정신이 맑아지고 오히려 자연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도 든다. 그러고 보니 밤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밤이라는 담금질로 나와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됨으로서 그렇다.

 

바짝 긴장한 채 첫 번째 쉼터 의자가 있는 곳을 지났다. 보퉁이와 고무신, 하다못해 그것을 올려놓았던 신문지조차 없다. 그렇다면 그 물건의 주인은 이 산에 죽으러 온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등산객이었을 뿐인가 보다. 보퉁이를 잠시 내려놓음으로 해서 내 생각의 보따리를 키워놓고, 어디론가 들고 가버렸다.

 

<가섭산의바람소리>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