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섭(맹동 초등학교 교사)

30여년전 초임지 시골학교에서 2학년을 담임하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지금도 눈앞에 삼삼이는 철이는 언제나 말이 없는 혼자만의 침묵의 상자 안에 갇혀 지내는 아이였다.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반 친구들도 누구하나 상대해 주는 친구가 없었다. 제 6학년짜리 형과 등하교 길에 아주 기본적인 말만 주고 받던 그런 아이였다. 정신지체가 있어보였다. 항상 누추한 옷차림에 검으퇴퇴한 피부에 손등은 부룩송아지의 엉덩이처럼 똥딱지가 말라 쩍쩍 갈라진 거치른 손등을 하고 있었다. 영양실조에다가 가정형편이 말이 아닌듯하였다..

현재 같으면 특수교육대상자로 특수교육의 혜택을 받을 아이였지만 그 시절에는 특수학급이란 말조차 없었다. 게다가 1학년 내내 방치되었던 터라 언제나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나 그는 자유인이면서 이방인이었다. 그 후 난 철이에겐 다른 보살핌이 다 필요 없이 보는 대로 머리 쓰다듬기, 손잡기 , 말 걸기, 눈길 주기 등으로 사각의 꼭꼭 닫힌 상자틀 속에서 꺼내주는 것을 학습 목표로 삼았다. 그래도 언제나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눈 한번 마주치는 일이 없는 이방인이었다.

5월 어느 날 아침 교실 내 책상위에 커다란 눈깔사탕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야, 이 사탕 누가 갖다 놓았니?” “철이가요.” 이럴 수가! 그날 난 철이를 불러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첫 반응에 그간 속 끓여 온 것이 쑤욱 내려가는 듯 했다.

그 후 철이가 드디어 내게로 스스로 다가왔다. 시선은 교실 바닥을 향한 채로. 난 너무도 신기하여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철이야! 할 말 있어?” 철이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이! 있잖어.”

“그래, 뭐? 얘기해봐.” “어제 저녁에 우리 아부지새끼가 우리 엄마를 막 팼어!”

“왜?” “술 처먹고 와서” “그래서?” “내가 막 빡치기로 막 박았어!” “아, 참 잘했네.”

내겐 너무 벅찬 감격이었다. 그 후 가끔씩 가장 기본적인 대화가 오고갔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아이들은 차츰 그와 어울리기 시작하였다.

세월이 흘러도 후 가끔씩 그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였다.

그러던 차 지난 6월달 일요일에 초임시절 6학년 담임을 하였던 제자들이 총동문체육대회를 주관하여 은사를 초청하게 되어 참석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뜻하지 않게 만난 그 철이, 건장한 중년 나이는 41세 그 시골에서 결혼도 하고 농사지으며 살고 있노라 하였다. 그래도 말은 약간 어눌하나 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어 보였다. 허나 안타깝게 한 것은 “야! 애가 몇이냐?” 하는 물음에 “선생님, 난 여자하고 사는데도 애가 안 생겨유.” 그 말이 나를 가슴 아프게 하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내 가슴시린 그 철이의 서글픈 눈망울을 지울 수가 없었다.

천지신명이시여! 이 불쌍한 철이에게 아이하나 점지해 주소서.......

나도 모르게 두 손 모아 합장을 하고 있었다.

학력만 부르짖는 요즈음 교육현장 참된 인성교육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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