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37번 음성 국도를 달린다.

시원하게 뚫린 도로위엔 이제 막 기지개를 펴고 나온 가을 태양이 마중을 나왔다.

괜한 투정을 부리 듯 눈을 살짝 찡그리지만 옆으로 길어지는 입 꼬리가 거짓임을 단박에 알게 해 준다.

이 지구상에 사람보다 더 간사한 존재가 있을까.

도로가 뚫리기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환경 보호자들이 외치는 자연 환경 파괴의 심각성에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 중의 한사람이 나였다.

헌데 지금 문명의 이기주의가 빚어 낸 편리함으로 작은 동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생존까지도 위협받고 있는 도로위에서 이 아침의 달콤함에 빠져 예전의 그 일들은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 버린 듯하다.

인간이 만든 개발이라는 것은 늘 그에 비례하는 희생을 강요당하게 된다.

거기에 희생당하는 대상은 언제나 인간이 아닌 힘없는 동식물이었다.

또한 더 무서운 일은 끊이지 않는 사람의 발길이 수많은 문제점들을 동반했다는 사실이다.

300여 년 전 사람들에게 바보라고 불리던 새가 있었다.

이름이 없었으면 더 좋을 뻔 했다.

아프리카 동쪽 인도양 남서부 먼 바다에 떠 있는 모리셔스 섬에는 인간도 천적도 없는 날지 못하는 새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손님이 찾아왔다.

사람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원숭이와 돼지라고 부르는 짐승도 함께 데리고 왔다.

사람은 정말 반가운 손님인 줄 알았다.

그저 반가워서 다가갔다.

바닥에 틀어놨던 둥지속의 알을 돼지와 원숭이가 가져가도 모리셔스 섬의 주인인 날지 못하는 새들은 불평도 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싸움이란 것을 해보지 않았기에 할 줄 몰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헌데 사람들은 모리셔스 섬의 주인인 자신들에게 도도새라고 불렀다.

이름을 불러주어서 좋았다.

하지만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자신의 새끼들이 사라지는 언제 부턴가 그 도도라는 이름이 바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도새에게도 한때는 힘찬 날개짓으로 하늘을 날며 꿈을 꾸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옛날 조상들이 기나긴 여행 끝에 정착한 모리셔스 섬에는 다양한 종의 조류들이 울창한 숲에서 서식하고 있을 뿐 신변을 위협하는 천적도, 그 어떤 방해 요소도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히 하늘을 날아야 할 필요가 없어진 도도새의 날개는 자연스럽게 퇴화했다.

날개는 더 이상 날개가 될 수 없었다.

그 후로 사람들은 배가 고프면 밥을 먹듯이 도도새를 사냥했다.

결국 어리석은 사람들의 욕심과 이기심은 모리셔스 섬에서만 살았던 날지 못하는 도도새를 영원히 전설속에 가둬 버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어느 곳에선 비명을 지르며 사라지고 있는 생물들이 있을지 모른다.

어느 종교에서는 도도새와 이들의 먹이인 카바리아나무의 예를 들면서 쓸모없는 듯 사라져 간 동물도 쓸모가 있더라고 설교한다.

이 또한 사람의 편에서 들이대는 잣대이다.

사람의 잣대보다 어리석고 무서운 것은 없다.

우연찮게 알게 된 도도새의 이야기는 그동안 굽은 길보다는 곧고 빠른 길을 택하고, 옆보다는 앞만 보고 달리던 내게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느 곳에선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욕심으로 빚는 건물과 길들이 늘어나고 있겠지.

스산한 가을 밤, 차곰한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작은 풀벌레 소리가 오늘 밤 나를 뒤척이게 한다.

<가섭산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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