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준(사단법인 한국예총음성지부장)

오늘은 대전 성모병원에 아내와 나의 진료예약이 되어 있어 새벽열차를 타고 진료를 받고 돌아왔다.

매월 한 두 번 씩 정기적으로 예약진료를 받아 오고 있는데 아내는 신경과를 비롯하여 너덧 군데나 들리기 때문에 자칫하면 진료 후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나와야 겨우 한시 20분발 충북선 열차를 탈 수 있다.

오늘은 조금 서둘러 진료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점심까지 먹고 열차를 탈 수 있었으니 그나마도 다행인 셈이다.

음성역에 도착하여 풀랫폼을 빠져나와 집으로 직행하려니 우선 급한 일이 화장실 용무다. 다른 승객들은 화장실도 들르질 않고 곧바로 역사를 뛰쳐나와 택시를 잡거나 자신이 몰고 와 역 광장에 주차시켜놓은 자가용차를 타고 바쁘게 귀가하느라고 법석들이지만 우리 내외는 화장실을 들르느라고 맨 마지막으로 역사를 나올 수 밖에 없다.

역 광장에는 영업용 택시 너덧 대가 손님을 기다리느라고 줄을 서 있다가 찾는 손님을 받아 급히 역 광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는데. 다들 제각기 손님을 모시고 떠났는데도 마지막 택시 한 대는 그대로 남아있는 품이 승객을 기다리고 있는 눈치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용무를 보는 시간이 길어져 내가 볼 일을 보고 나와 한 참이나 기다려도 아내는 얼른 나오질 못하고 있다.

먼저 나온 나는 택시를 바라보며 혹시 우리를 기다리느라고 저렇게 늦게까지 자리를 뜨질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짐작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애써 신경을 쓰질 않고 아내가 화장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참 뜸을 들인 다음에야 아내는 손가방을 힘겹게 들고 화장실 문을 떠밀고 나왔다.

우리 내외는 역사를 나와 곧 바로 내 차에 올랐다.

우리가 차에 오르자마자 그 때까지 손님을 기다리던 그 택시가 시동을 걸고는 빈 차로 휑하니 떠나가고 있질 않는가!

“아차! 정말 저 차가 우리를 바라보고 사뭇 지켜보다가 우리가 자가용으로 오르는 것을 보고서야 그냥 빈 차로 돌아가는 모양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아내를 바라다보며, “여보! 저 택시가 우리를 기다리다가 자가용으로 가니까 그냥 허탕을 치고 돌아가는 모양이오. 저 기사가 얼마나 허망 하겠소?”하며 나는 맥없이 차의 시동을 걸었다.

아내도 “글쎄요... 그 마음이 얼마나 허탈할까?”하고 맞장구를 치며 내 말에 응수하면서 미안한 마음을 감추질 못한다.

“하루 종일 벌어도 그날 일당도 나올 듯 말 듯 하다는데 저렇게 허탕을 치고 빈차로 돌아서는 기사의 마음은 얼마나 허탈할까? 우리를 기다리는 줄 알았더라면 그냥 가라고 손짓이라도 했을 걸... 아! 정말 미안하게 됐네..” 하며 뇌까리는 내 가슴 속은 그 기사에게 무슨 죄라도 진 것 같은 안쓰러움으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 마지막 택시가 그래도 우리를 손님으로 맞아보려고 그렇듯 끝까지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기껏해야 삼천여원 안팎의 택시비지만 그것이라도 건져보려고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것마저 허탕 친 그 기사의 마음이 얼마나 씁쓸할까?

생각할수록 그 기사가 안쓰럽기 짝이 없다.

“차라리 내 차를 놔두고 그 기사의 택시를 이용해주었더라면 얼마나 떳떳했을까?”

끝없는 연민의 정이 납덩이를 삼킨 것 같은 내 가슴 속을 무겁게 짓눌러옴을 의식하며, 핸들을 잡은 내 눈 앞에는 그 마지막 택시의 쓸쓸해 보이는 뒷모습이 끊임없이 어른거리는 것 같아 내내 불편한 심기를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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