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칠흑 같은 선운사의 밤 길,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하게 나와 오들오들 떨고 있다. 화려한 네온 사인이 번쩍이는 거리보다 이렇게 인적이 끊긴 가로등 하나 없는 곳을 거니는 것은 또 다른 행복이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으로 우리 가족은 4시간여를 달려 어둑해질 무렵에야 선운사 근처의 펜션에 도착했다.
펜션 마당에서 장작을 태운 숯으로 고기를 구워먹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 혼자서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내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일까. 펜션 마당에 타오르는 장작더미위에선 하나도 보이지 않던 별들이 이렇게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곳으로 나오니 금방이라도 오소소 떨어질 것 같이 많은 별들이 떠있다. 캄캄한 밤, 하늘에서 빛나고 있는 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먼 기억속의 저편으로 달아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미치도록 별이 보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20대 초반이던 그때,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서울의 번화가 충무로에 있던 한 출판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 언니네 집이 태릉 근처에 있던 관계로 나는 전철을 두 번을 걸어 타고 다녀야 했다. 지금이야 전철이 태릉 앞까지 연결 되어있었지만 그때는 석계역에서 내려 언니네 집까지 30분 정도를 걸어가야만 했다.
사회 초년생에게는 모든 것이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내가 다녔던 출판사는 규정이 있었다. 여직원은 치마를 입어야 하며 굽이 높은 하이힐을 신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원체 생김도 선머슴처럼 생겨 먹은데다 성격도 바지를 즐겨 입던 내게 치마와 하이힐은 몸보다도 마음을 더 옥죄곤했다. 그날도 신발 뒤축을 구겨 신었다는 이유로 사장실에 불려가 한바탕 싫은 소리를 듣고 나온 터였다. 석계역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사장님에게 못한 반항이라도 하듯 뒤축을 구겨 신었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누가 보든지 말든지 신발을 집어 들고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새로 산 구두로 인해 생긴 뒤꿈치의 물집이 해방감에 환호성을 지르는 듯 했다.
비도 오지 않는 맑은 날이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싶었다. 하이힐을 두 손에 매달고 월계다리를 지나는데 문득 하늘이 보고 싶어졌다. 헌데 하늘에는 빛바랜 초승달만이 힘없이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옆에 당연히 있어줘야 할 별들은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보이질 않았다. 그때처럼 별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는 없었다.
휘청거리는 도시의 화려한 네온사인에 자리를 빼앗긴 하늘은 이미 밤의 의미를 잃어버린 뒤였다. 도시의 휘황한 불빛에 갇혀 사는 그 누구도 달의 모습이 궁금하다는 생각도 별들의 행방도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단지 도시의 번쩍거리는 불빛을 더 갈구하고 있는 듯했다. 그때였던 것 같다. 도시의 가로등 불빛에 달려드는 불나방의 모습이 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그 다음날 회사에 사표를 내고 짐을 챙겨 시골로 도망을 치듯 내려왔다.
별구경에 취해 멀리 온 모양이다. 저만치서 아이들과 남편의 소리가 들린다. 한참동안 보이지 않는 나를 찾아 나온 길일게다. 그러다 하늘의 별을 본 모양이다. 별을 처음 본 것처럼 호들갑이다. 허기사 그동안 아이들도 학교로 학원으로 다니느라 밤하늘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다.
욕심일까. 아이들 가슴속에도 별 하나씩을 간직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것은…… 밝은 곳에서 더욱 더 빛을 발하는, 그래서 밝은 빛이 사라지면 보이지 않는 인공별이 아닌, 어둡고 조용한 곳에서 더욱더 오롯이 빛 날 수 있는 그런 별들이 아이들 가슴속에서 언제나 반짝반짝 떠 있기를 바래본다.
<가섭산의바람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