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에는 금왕 도서관에서 서예교실이 열리는 날이다.
그날은 갈곳이 있기에 마음과 몸이 빠르게 리듬을 탄다. 문방사우(文房四友)를 가방에 챙기고 현관문을 나서면 누구도 부럽지 않은 마음이 된다.
금왕에 사는 주부들이 취미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몇 년 전의 일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적 생활은 혼자 남게된 시간을 텔레비전을 보거나 이웃 주부들과 수다떠는 일로 오전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나태한 생활을 하던 주부들에게 배움을 맛볼 수 있는 기회는 무엇인가를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삶에 의욕을 주었다. 그런 면에서 배움의 욕구와 문화적 갈증을 해소해 주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했다.
서늘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나는 논둑 길을 걷고 있다. 작은 풀꽃은 향기도 없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바라보고 있으면 마냥 좋다.
무극 천(川)에 다다르면 마음까지 물들일 것 같은 푸른 신록으로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발 아래로 흐르는 징검다리를 건너며 내가 한발씩 앞으로 내딛는 디딤돌이 내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만약 디딤돌이 없다면 나는 물을 건너가지 못하거나 물에 빠질 수밖에 없는 형편에 놓이게 된다. 그런 것처럼 우리에게 배움의 장(場)이 없었다면 우리 주부들은 타성에 젖어 나태한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작년 11월 작품전시회를 앞두고 글씨를 연습하던 때가 생각난다. 작품을 낸다는 기쁜 마음에 희망과 기대로 열심히 글씨 연습을 했다. 그러나 마음대로 글씨가 잘 되지 않아 속상한 마음에 작품을 포기하고 싶은 적이 여러번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열심히 해둘걸 후회를 해 보지만 답답한 가슴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작품은 내야 하는 날짜를 3일 앞두고 맹연습에 들어갔다. 자정을 넘기고 2시, 3시까지 노력하였으나 어찌된 일인지 마음에 드는 작품이 한 장도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을 이기지 못해 종이를 구기거나 먹칠을 해 놓기도 했으며 엎드려 한숨을 토해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작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자신을 타이르며 ‘먼저 인격수양부터 하라’고 자신에게 꾸짖어 보았다.
그렇게 어렵게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데 낙관(落款)의 마지막 글자를 쓸 땐 손이 떨려서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선생님과 주위의 여러 회원들의 격려에 힘입어 작품 전시실에 당당하게 걸릴 수 있었다.
우리가 작품전시회를 열기까지 붓글씨에 입문(入門)하게 된 것은 3년 전 자리를 마련해준 금왕 도서관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왕에 서예의 씨앗을 퍼뜨린 ‘황복선’선생님의 열정이 오늘을 있게 했다.
이제 그 씨앗은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잎을 만들었다. 그리고 작지만 예쁜 꽃도 피웠다. 이제 우리는 열매를 맺기 위하여 오늘도 선생님의 가르침 아래 가로획하나 세로획 하나에도 정성을 들인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제 시작한 배움은 주부들의 징검다리가 되어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자라나는 수목(樹木)처럼 우리를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여기 아름다운 마음과 미소가 함께 하는 금왕 도서관엔 수묵 향(水墨香)이 넓게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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