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눈을 감으면 나는 어느새 솔밭 그늘에 앉아있다. 열여덟 살 소녀 둘이서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숲이 떠나가라 웃고 있다. 웃음소리에 잠을 자듯 고요했던 숲은 놀란 듯 기지개를 펴며 술렁이기 시작한다. 그중 하나는 나이고 또 한 소녀는 진한 경상도 사투리의 소녀다.

벌써 이십 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람은 기쁠 때 함께 했던 이 보다 힘들거나 슬플 때 같이 있어준 이가 가슴속에 더 깊이 남는다고 한다. 내 여고 시절은 그리 낭만적이지도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일반 상고를 다니던 나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산업체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산업체 학교에서의 일년 반이라는 기간이 인생 전반에 비춰본다면 아주 소소한 세월에 불과 하겠지만 내 마음에 키가 가장 많이 자랄 수 있었던 기간이었다. 고통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시련을 극복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도 했던 곳이다. 그때는 너무도 힘들었기에 한편으로는 잊고 싶은 곳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있었기에 다시 돌아가고픈 추억이 되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만난 진주 같은 친구다. 산업체 학교였지만 규모가 컸던지라 고향을 각지에 둔 사람들이 다 모인 곳이었다. 나이는 나와 한동갑이었지만 한 학년 아래였던 그녀는 고향이 경상도 울산이었다. 외출 할 일이 있어 시내를 같이 나가면 목소리도 큰데다가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은 한번쯤은 그녀를 쳐다보곤 했다.

급격한 변화에 내 몸은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또래의 소녀들이 단잠을 자는 시간에도 우리는 밤새 뛰어 다니며 일을 해야만 했다. 기계 앞에서 졸거나 잘못 다루었다가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현장에서 그녀는 내가 꾸벅 꾸벅 졸고 있는 것을 보고는 물수건을 슬그머니 전해 주었다. 그 후에도 일이 너무 힘들어 이불을 뒤집어쓴 채 우는 날이 많았다. 그것을 눈치 챈 그녀는 나를 회사 앞 포장마차로 끌고 가서는 쫄면을 사주며 힘내라고 그리고 웃어보라고 했던 고마운 친구였다.

그녀는 끼가 많았다. 소풍을 가면 각설이 의상을 준비해 나와서는 허리를 구부리고 어디서 구해 왔는지 다 찌그러진 깡통을 두들기는 모습에 전교생은 배꼽이 빠져라 웃을 수 있었다. 나이에 비해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소녀들에게 웃음을 주던 그녀는 내게는 둘도 없는 친구였고 학교에서는 명물로 명성이 자자했다.

어느 날 볼일이 있어 외출을 하고 온 나는 사물함에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발견했다. 풀어보니 알록달록 곰 인형 두 마리와 쪽지가 들어 있었다. 인형과 함께 들어 있던 쪽지에는, 내가 있어 자신은 행복하다고 써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내게 큰 위안이 되어 주고 있었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그렇게 고된 학교생활을 마감하는 졸업식 날, 식장은 눈물의 졸업식장으로 변해 있었다. 3년간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하고 오늘 이 자리에 선 그들이었다. 그 기쁨은 눈물이 되어 하염없이 넘쳐흘렀다. 식이 끝나고 그녀는 내게 눈물을 글썽이며 꼭 자기를 잊지 말고 찾아와 달라고 했다. 나는 그러마 약속을 했다. 서울에 있는 출판사에 다니던 나는 몇 번의 편지만을 한 채 그것도 바쁘다는 핑계로 미적미적하다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이십 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옷장 위에는 그때 그녀가 전해준 곰 인형 두 마리가 변함없는 모습으로 웃고 있다. 그녀는 무심한 나를 원망했겠지. 하지만 내 가슴속에서 그녀를 떠나보낸 적이 없었다. 눈을 감으면 나와 그녀는 회사 앞 포장마차 안에서 쫄면을 먹고 있고 그리고 기숙사 뒷동산에 나있던 솔밭 길을 뛰어 다니곤 한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산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녀와 함께 했던 추억이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진다. 어떤 시인은 이런 말을 했다. 그리움은 만날 수 없는 기다림이고, 기다림은 만날 수 있는 그리움이라고. 내게 그녀는 만날 수 있는 그리움이라고 믿기에 멋 훗날을 기약 해 본다.

<가섭산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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