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수 목사(음성군이주민종합지원센터 대표)

아이가 다섯인 일본아줌마, 네명인 필리핀 아줌마, 세명인 베트남 아줌마, 선물하나 받아들고 기뻐하는 결혼이주여성들과 아이들, 노래는 얼마나 잘 불르는지, 조선족 아줌마 얼마나 춤도 신명나게 추시는지.... 이 분들이 우리가 사는 음성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는 외국인이주여성들입니다.

한 집에 아이가 셋은 평균인 것 같습니다. 하나, 둘인 가정은 참으로 많습니다. 참 보기에 좋습니다. 이 아이들이 앞으로도 쭉 지금처럼 행복하게 웃으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비가 올지도 모른다하여 걱정했었는데 낮에는 날씨가 따뜻했습니다.

금왕 시외버스 터미널 뒤쪽에 있는 중국식품점의 여사장님의 마음씨처럼 말입니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시기에 그들을 자주 만나고 그들의 외로움도 잘 알아서 일까요? 축제는 시작하고 어디가서 도움을 청할 곳도 없어 중국식품점에 가서 이번 행사의 취지를 말했더니 좋아하시며 그 자리에서 바로 도움을 주셨죠. 환하게 웃으시며 수고하신다고도 하셨죠. 그로부터 홍보에 누구보다 열심히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습니다.

외국에서 사는 자체가 힘들고 고달픈데,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돌을 던지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독으로, 사우디로 돈 벌러 많이 나갔었습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이주 노동자들의 모습이 몇 년 전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흰 피부에 큰 키의 유럽에서 섞여 일했던 우리나라 간호사들을 생각하고, 더운 사우디에서 땀 흘리며 고생했던 우리의 남편과 오빠들을 기억해보십시다.

외국인, 나그네들을 사랑하십시다. 그들은 우리의 이웃이고 직장동료입니다. 결혼이주여성들은 내 며느리이고 동서이고 형수입니다.

늦은 밤 시간에 백열등 하나가 4개의 무료전화박스위에 걸려서 그렇게 밝지 못해도, 떠날 줄 모르고 시끄러운 노래자랑에도 아랑곳없이, 가족들과 통화하는 외국인근로자들...

제가 처음 89년에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전화하기 위해 다구판의 YMCA건물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얼굴 모습이 다르다고, 그리고 태어난 나라가 다르다고 느끼는 감정도 다를까요? 부모님, 형제들, 안부를 물으면서 얼굴이 밝게 펴지는 저들을 보았습니다. 저들이 돈을 벌러 한국에 왔는데 ,진짜로 돈을 많이 벌어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삐뚤한 글씨로 ‘우리나라에 오신걸 환영합니다.’라고 쓴 어린이집 아이, ‘한국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좋은 추억 되세요’라고 쓰고 하트모양을 남긴 초등5학년의 여자아이 둘, 우리도 진정 이들이 우리나라에 온 것을 환영하고 있을까요?

이번이 첫 해 이지만 외국인들이 즐겁게 보내는 것을 보면서 좀 더 잘 준비했었으면 하는 생각이 더 듭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왔는데 아이들의 손에 풍선하나 제대로 쥐어주지 못했내요. 그러나 축제를 위해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회사의 제품을 경품으로, 자기가 농사지은 쌀을 경품으로, 또 정성을 모아 후원으로, 마음의 진솔한 말로 저에게 힘이 되어 주신, 많은 평범하신 내 이웃 분들께 어떻게 감사해야할지... 이래서 제가 만난 모든 분들이 이 곳 음성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계신 것 같습니다.

우리음성군내에는 4200명 정도의 외국인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외국인근로자,이주여성,외국인유학생,결혼이민자가정,앞으로 5년을 바라볼 때 기하급수적으로 외국인은 더 늘어날 것입니다. 이들에게 우리는 이웃이요, 가족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이제 이들의 나라에 있는 다국적기업에서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우리의 자녀들에게 또 이웃이 되어주고 가족이 되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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