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준 한국예총 음성군지부장

요즈음 젊은이들의 멋 부리는 모습을 바라볼 양이면 어느 때는 내가 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에 사로잡힐 때가 종종있다.

하고 많은 유행 중에서도 의상의 멋을 즐기는 것 중에 젊은이들이 즐겨 입는 청바지에서 느끼는 감회 하나, 무릎이 뿌옇게 닳아 구멍이 뻥 뚫린 바지를 걸쳐 입고 그나마도 배꼽까지 드러내놓고 거리를 날보란 듯이 활보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내 눈살은 자연 찡그러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곱게 보아 넘기려 해도 곱게 보아줄 수 없는 그 어기뚱한 멋부림에 짜증이 나는 혐오감을 느끼는 것은 시대의 흐름과 유행의 진수를 모르는 몰지각에서 오는 망상일까!

늙은이가 낡아빠진 구세대적 사고방식에 젖어 울부짖는 넋두리에 불과하다고 일소에 부쳐버리고, 낡은 세대는 어쩔 수 없다는 조소를 받아도 좋다. 아무리 새 시대의 참신한 멋이라고 해도 그런 것을 멋이라고 생각하는 그 사고방식부터 상식적으로 보아도 도저히 이해할 수 가 없다. 어째서 떨어진 청바지가 다른 어느 새 옷보다도 더 멋진 의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지...

새로 사서 한번도 입어보지도 않은 멀쩡한 새 옷은 거침없이 내다버리면서도 다 떨어진 청바지는 터무니없는 비싼 값으로 사들이는 그 풍조가 정말 이해가 가질 않는 것이다.

청바지는 노동복(worker dress)으로 알려져 있다.

그 질긴 멋에 막노동하기에 알맞은 복장이라고 한다면 그런대로 수긍할 수도 있겠지만 노동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남 보다 더 많이 일해서 이렇듯 옷이 헤어졌다고 우쭐해진 마음에서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입는 것이라면 신성한 노동대가(勞動代價)인 “땀의 훈장(勳章)”쯤 으로 보아주고 칭찬을 아끼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그것과는 전혀 격이 다른 멋 부림이 아닌가!

남이 이리로 가니까 나는 저리로 가야겠다는 생각이라면 그건 지나친 에고이즘이다.

아무리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남들이 가는 길이 옳은 길이라면 기꺼이 함께 어깨동무하는 아량을 보여주는 것이 참다운 자존심의 발로가 아닐까!

내 자존심만 내세워 남의 옳은 짓은 무조건 내뱉고 폄하하는 풍조가 이 사회에 얼마나 많이 팽배해 있는가?

같은 사물을 놓고도 보는 시각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질 수는 있다.

시대와 장소와 사회적 풍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각적 가치관이 만인이 공감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대다수 군중이 객관적으로 공감을 이루는 일이라면 이를 애써 부정할 수는 없다. 끝까지 부정하고 버틴다면 이는 혼자만의 독선이요 독단일 따름이다.

나의 독특한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어기뚱한 멋을 부려보겠다는 야심적인 생각에서 시작한 행동이라 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면 그 시도했던 의도를 접어버릴 수 있는 용단도 참다운 멋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가치판단이 전도된 사회적 풍조가 또 다른 비뚤어진 가치관으로 번져나가지 않도록 우리는 오늘의 현실을 냉엄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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