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옥

  지난달 집사람과 머리도 식힐 겸 병천으로 순대를 먹으러 간 적이 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아우내 장이 서고 있었습니다. 장터도 아닌 순댓집 골목까지 빼곡하게 들어선 행상 때문에 어디에 차를 대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더군요. 차도까지 연만하신 분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서울에서 내려온 분들이라고 합니다. 수도권 전철이 천안까지 열려있어 차 삯이 없어도 천안까지는 올 수 있고 시내버스도 반값이면 아우내까지 오실 수 있으니 순대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 한 사발 값이면 하루가 즐겁지 않겠습니까. 거꾸로 천안분들은 서울 탑골공원으로 하루 나들이를 하신다고 하네요. 무교동 낙지 골목에서 얼큰 달콤한 낙지 한 접시와 소주 한 잔 사드시면 세상이 다 내 것이겠지요.

요즘 지공(地 空)의 나이라는 새로운 말이 등장했습니다. 서울에서 순대 드시러 오시는 분들이나 무교동 낙지 골목으로 발걸음을 하시는 어르신들이 모두 지공의 나이가 지난 분들이랍니다. 예순을 이순(耳順)이라 하고 일흔을 종심(從 心)이라 하는 것은 들어봤지만 지공(地 空)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땅과 하늘을 합쳐놓은 신조어를 나이에 맞추어 놓았으니 더더욱 모르겠습니다. 공자는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六十而耳順),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라는 말씀은 하였어도 어느 사전을 찾아봐도 지공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공무원 정년연장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6급 이하 공무원이 2009년 쉰여덟 살로 상향 되는 것을 시작으로 2011년엔 쉰아홉, 2013년부터는 예순 살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사무관 승진을 못 해도 이순(耳 順)까지는 공식적인 돈벌이를 하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종심(從 心)까지가 문제가 됩니다. 아이들의 학비도 예순 서넛까지 대야하고 지역에서 살려면 사람 노릇을 하려면 여기저기서 날라오는 축부의금 고지서 알뜰히 챙겨야 하지요. 앞으로 연금도 예순다섯이 넘어야 준다고 하니 걱정이 앞섭니다. 요즘 세상 돈이 있어야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종심(從 心)의 경지에 이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공(地 空)은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나이랍니다. 개정될 연금법에 의하면 연금을 처음 받을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고요. 예순다섯이 되면 지하철이나 전철 매표소에서 무임승차권을 줍니다. 전철이 가는 곳이면 돈 없이도 종일 타고 다닐 수 있지요. 시내버스도 반값이면 갈 곳까지 모셔다 드립니다. 그 나이가 되면 삶이 어찌 될지 걱정되니 그동안 뭘 했는지 한심한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들꽃을 기르는데, 힘이 많이 듭니다. 최소한 *망구(望 九)까지는 자식들 부담은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덤으로 이순, 지공, 종순, 망구까지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법을 알려 드릴 테니 실천하고 말고는 알아서 하시지요.

우리 마을에 어떤 노부부가 손자를 맡아 보살피고 있었습니다. 묵정밭 팔아 아들을 가르쳐 번듯한 직장에 취직시킨 덕에 며느리도 맞벌이하는 신여성을 얻었지요. 덕분에 일흔이 넘은 연세에도 손자를 보아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편안한 망구를 위해서 기발한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귀여운 손자를 데리고 다니면서

“이게 뭐지?” “이마” “아녀 그건 마빡!”

“여긴 뭐라고 부르지?” “입” “아녀, 주둥이여”

어린아이들이 여간 잘 따라합니까? 머릿속에 마빡, 주둥이, 똥구멍으로 굳힌 것이지요. 주말에 아들 내외가 자식을 보러 왔습니다. 노부부 아들 내외 앞에 앉혀놓고 손자의 이마를 짚으며

“이게 뭐지?” “...”

어떻습니까? 늘그막에 보모 노릇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망구 : 구십을 바라보는 나이, 즉 여든한 살을 말합니다.

<가섭산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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