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산 기우제, 양수기 보내기 성금도 모아

목마른 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세상 사는 일은 늘 부족함 속에, 목마른 갈증 속에 사는 것이라 하지만 요즈음 우리들 모두는 온 산천을 촉촉이 적셔줄 단비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다.
변화없는 일상 가운데에서 여행은 우리의 마음을 적셔줄 단비가 되곤 한다.
더욱 문화를 애호하고 문학과 예술을 사랑해서 마음이 합한 사람들의 여행이라면 더할 나위없이 촉촉한 단비가 될 것이다.
여행은 늘 동경어린 설레임으로 다가와 새로운 경이감을 일깨워 마음속 움츠려 들었던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체험하며 일상에서 벗어나 나를 낯설게 바라봄으로 다시 나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여행가들은 낯설고 거친 파도를 헤치고 모험어린 향해의 여행을 지속적으로펼치고 있을 게다.
음성예총의 모든 회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자리.
4월과 5월 두차레 걸쳐 문화탐사에 대한 스케줄을 잡았지만 차편이 여의치 않아 타는 목마름의 가뭄속, 유월의 잔인함을 가슴속 깊이 묻으며 버스에 올랐다.
음성예총 산하 각 협회 회원들과 일부 회원 가족들이 함께 전북 진안의 마이산을 향해 출발하는 문화탐사.
회원들의 얼굴에는 전국적인 가뭄의 영향이 얼마나 될까하는 의구심으로 가득차 있는 반면 어린 아이들은 즐거운 설레임으로 활짝 웃고 있다.
충북 도민체전을 준비하느라 말쑥하게 정리된 음성의 풍경이 새삼 정겹고 아름답다.
늘 같은 풍경, 같은 거리임에도 차창 밖의 풍경이 생경한 아름다움임에 즐거워하며 출발이다.

-타는 목마름의 농심

우리를 태운 두 대의 버스는 우리 어머니 가르마 타시듯 반듯반듯 줄 세워 모내기 해놓은 유월의 들녘을 시원스레 달려간다. 가물어 물이 부족하다 부족하다 하면서도 논에 심겨진 어린 모들은 이제 땅심을 받아 제법 씩씩하게 어깨를 세우고 있다.
연신 창밖을 내다보며 혹 물이 모자라 모내기를 못한 논은 없나 살핀다. 다행히 모내기를 하지 못한 논은 보이지 않는다. 2개월여의 가뭄 속에서 이렇게 푸르른 들녘을 만들어 놓은 농부들의 노고를 생각하니 고개가 숙여진다.
문득 부산한 삶 속에 잊고 사는 친정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멀지 않은 곳에 계시는데도 내 사는 생각에 밀려 뒷전에 계시는 어머니.
어릴 때 어머니는 반듯하고 예쁘게도 머리를 빗겨 주셨었는데 나는 내 아이의 머리를 어머니만큼 반듯하게 빗겨주고 있는가.
유월의 들녘은 어머니의 솜씨처럼 정갈히 자라나고 있었다.
음성을 출발한 지 세시간만에 말의 귀를 닮아 마이산이라 부른다는 두 개의 거대한 산 봉우리를 볼 수 있었다. 동쪽의 산을 수마이산(678m), 서쪽의 산을 암마이산(685m)이라 부른다는 두 산봉우리는 중생대 백악기 말에 진안읍 쪽으로는 화강암질 편마암이, 마이산에서 임실 주변까지는 마이산 역암이 분포하고 있다가 백악기 말 주변의 화강암류의 분출에 따라 화강암 질편마암이 융기된 뒤 역암지역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흐르며 침식작용이 일어나 침식에 약한 화강암질편마암은 진안고원으로, 침식에 강한 마이산역암은 그대로 남아 산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하면 지금의 산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마이산 역암이 중생대 백악기에는 호수의 바닥이었는데 그위에 있던 화강질암질편마암이 오랜 시간의 침식으로 높이 350m 내외의 진안고원을 이루었고 마이산역암이 680여m의 봉우리로 우뚝 솟아 오른 것이다. 산봉우리의 정상에서 물고기와 조개류의 화석을 볼 수 있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한다.
시간에 의한 역전(逆轉)이다.
봄에는 자욱한 안개속을 뚫고 나온 쌍돛대 같다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진안고원은 용의몸, 두봉우리는 용의 뿔 같다 하여 용각봉, 가을 단풍이 물들면 솟은 봉우리가 말의 귀를 닮았다 하여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려도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 같다 하여 문필봉이라 한다는 설명을 들으며 바라보니 정말 그렇듯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면 전체를 바라보기 힘들다.
멀리 보이기 시작한 두 개의 봉우리는 위용을 드러내며 우뚝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버스 안에서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가요제와 시낭송이 한창이다. 상품까지 내걸린 가요제에 온 회원들이 열창이 뜨겁고 조진태 소설가와 유대준 수필가의 심사는 진지하다 못해 엄숙하기까지 해서 노래 부르는 회원들을 더욱 열창하게 만들고 있었다.
귀를 세워 세상 소리에 귀기울이고 있는 마이산에 왔으니 우리도 마음의 귀를 열고 세상의 소리와 자연의 소리를 들어보자는 한일중학교 이원익 선생(음성문인협회 소속)의 멘트가 가슴에 닿는다.
이제 차에서 내려 숲길을 걸으며 나는 열심히 마이산의 새소리, 물소리, 나뭇잎 팔랑이는 소리, 내 마음 속의 소리들을 들으리라 생각한다.
진안군 사양골에서 출발하여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사이의 계곡을 돌아 은수사와 탑사, 금당사를 거쳐 금촌의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해서 산행을 하기로 했다.

-자연의 경외감

증재록 지부장, 반영호 상임부지부장, 반숙자 수필가, 조진태 소설가과 유대준 수필가, 미술협회와 문예협회 회원들, 문인협회회원 모두 모두 함께 담소를 나누며 천여개의 계단을 오르는 고통의 산행을 시작했다.
우리 앞에 다가선 마이산은 가파른 계단을 통해서 세상살이의 이치를 설명하듯 한단계 한단계 밟아야 오를수 있는 순리와 구슬땀으로 얼룩진 자연의 경외감으로 다가왔다.
가볍던 발걸음이 무디어 질 무렵, 주봉자 시인이 음양이 조화롭고 명산인 이곳을 그냥 지날 수 없다며 기우제를 지낼 것을 제안했고 수마이산과 암마이산의 중간지점에서 우리는 마음을 합하여 기우제를 지냈다. 물론 막걸리와 과일로 차려진 간략한 제상이었지만 간절히 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예총 권순갑 부회장, 이석문 사무국장,문예협회 김원기 회장,안용식 부회장,주상보 시인등이 차례로 제를 올렸다.
전국적인 가뭄의 영향으로 우리들의 기우제에는 외지 등산객들도 참여하여 모두가 한마음으로 제를 올렸으며 단비가 내리기를 빌고 또 소망했다.
단비를 기원하는 마음은 농심이며 전국민의 마음이라는 것을 새삼 체득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은수사 마당에서 세 번치면 마음이 고요해진다는 동양에서 제일 큰 북을 정성스레 세 번 두드렸다.
커다란 북은 오래도록 긴 여운으로 울렸고 작은 일에도 자주 소리를 내고마는 나는 합장하고 반배를 정성스레 하며 마음 속이 고요해지기를 기도했다.
은수사를 내려오니 조선말 나라를 걱정하고 세상을 염려하던 효령대군의 15대손 이갑룡 거사가 낮에는 돌을 쌓고 밤에는 탑을 쌓되 천지음양의 이치와 팔진도법에 따라 정성과 기도로 축조했다는 돌탑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탑사가 한 눈에 들어 온다. 25세에 마이산에 입산하여 98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솔잎을 생식하며 시종일관 쌓았다는 돌탑 앞에서 우리도 작은 돌 한 개씩을 올려 놓으며 합장했다.
탑사를 내려와 울창한 산길을 걸으니 옷깃에 스몄던 땀방울이 식으며 시원해진다.
성하의 청록은 아니어도 연둣빛 푸르른 나뭇잎들 사이로 햇살이 반짝이는 숲 길에서 정화된 맑은 산소를 마음껏 마시니 마음 속의 오욕이 사라지는 것 같다.
삼림욕이란 이런 것이구나!
탑사에서 1.4km를 천천히 걸으니 신라시대에 창건되고 이성계가 그렸다는 몽금척도가 있는 금당사가 있다. 금당사 경내를 휘감고 도는 은은한 향내음과 천수경을 외는 소리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저절로 손이 모아지고 고개를 숙이게 되는 엄숙함과 경건함.
담장 옆에는 우수수 감꽃이 지고 있었다.
감꽃 진 자리에 맺힐 감들을 위해 햇살은 부지런히 감나무 잎 사이를 드나들며 여름을 보낼 것이다.

-삼의당 부부 시비

내려오며 마지막 만난 것은 부부 시비(詩碑)였다.
사대부들의 충(忠)을 중요시했던 조선시대에 여성으로서 충을 노래한 삼의당 부부를 기리는 시비를 보며 시대를 앞서간 여인의 쉽지 않았던 시작활동(詩作活動)을 생각해 보았다.
시인이라는 이름을 앞에 붙이고 나는 얼마나 시대를 앞서가고 있는가?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시대에 뒷북만 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마이산에서 돌아오는 길은 우리에게 더욱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여흥의 시간 틈틈이 각출한 금액을 물이 모자라 애타하는 농가에 양수기를 구입하도록 적은 힘이나마 보태자는데 모아졌다. 적은 일이지만 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분명 음성예총의 모든 회원과 가족들은 자신만이 아닌 이웃에게 귀를 기울이고 함께 아파하며 함께 걱정하고 함께 나눌 줄 아는 아름다운 단체였다.
우리의 발길 닿는 가장 높은 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합장하고 고개 숙일 때마다 가뭄이 빨리 해소되기를 기원했고, 탑사의 발길 머무는 곳에 돌 하나를 올려 놓으면서도 어서 해갈이 되기를 소망하고 조금씩 모아 양수기를 사는데 보태자며 마친 우리 음성예총의 문화탐사는 참으로 멋진 여행이었다.
무미건조 했던 일상을 촉촉이 적시기에 충분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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