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경

 

가뭄에 목이 마른 농심을 달래 주기라도 하듯 밤새 비가 내렸다.

비온 뒤 여름햇살은 회초리 매질만큼 따끔하다. 그 따가운 햇살을 등짐하고 둑길로 들어선다. 억세던 잡풀도 밤사이 빗줄기에 요조숙녀가 되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들판을 바라본다. 목마름을 들이킨 이삭이 실바람을 타고 설렁이며 점잖게 물결을 이룬다. 마치 조무래기들이 술래잡기하는 모습 같다. 모내기를 한지가 엊그제인 것 같은데 6월이 지나 7월도 중반이고 보니 저들도 이젠 장정이 다됐다. 알곡이 열리기 시작했고 밭엔 고추가 빨갛게 익어간다. 이렇게 장마 비가 오락가락 수런댈 때 여물어 가는 들판을 바라보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친구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공부도 잘했고 운동도 뛰어난, 무엇보다 늦둥이인 그 친구가 부러웠던 것 보다 더 부러운 것은 그의 아버지다. 짙은 눈썹에 아내를 위해 군불을 때주고 여인을 위해주는 모습도 어린 내게 선망을 안게 했지만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늘 의미부여를 보따리 채 던져주셨다.

한 번은, 여름장마가 시작될 때였다. 그 당시 어찌나 억수같이 빗줄기가 그치질 않던지 개울둑이 터지고 넒은 들판을 삼킨 물줄기가 마을 입구까지 차 올라왔다. 돼지가 떠내려가고 수박도, 뿌리째 뽑힌 나무들까지 흙탕물속에서 어쩌지 못한 채 뱅글뱅글 돌며 휩쓸려 떠내려갔다. 조무래기들은 신작로에 패인 구덩이에서 미꾸리를 잡아 검정고무신에 담느라 낄낄거렸지만, 어른들은 연꽃방죽까지 터지게 생겼다고 수런거렸다. 다들 조바심이 일면서 걱정까지 더해 입으로만 푸념처럼 쏟아놓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아버지는 삽자루를 등짐하곤 말이 없으셨다. 한손엔 삽자루를 쥐고 계셨지만, 다른 한손은 남이 보지 못한 목주를 돌리고 계실뿐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미친것만 같았던 흙탕물은 알곡이 되어가는 그 많은 장정들을 흠씬 두들겨 엎어놓고는 밤사이 빠져 나갔다. 친구아버지는 어린 내게, 미루나무 아래 신작로에서 진흙으로 뒤덮인 들녘을 가리켰다. 그리곤 “저 들판을 봐라. 그래도 고개를 들잖니? 앞으로도 그렇고 또 앞으로도 우리의 뜰은 뿌리이고 생명이다. 씨를 버리고 터전을 외면하면 망한다.”라고 외치셨다. 그때는 어린 나이라 너무도 당당하게 힘이 실린 말이었어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기억 속에선 지워지질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건데 그 당시 미국밀가루가 우리의 식탁을 점령당하고 있음에 후세들에게 경각심과 함께 앞으로의 일을 우려를 했을 만큼 생각이 많으셨던 것 같다.

얼마 전에는, 그 당시 청년이었던(지금은 중반을 넘어섰지만)분들과 옛이야기를 나누다 친구아버지에 얽힌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고인이 되신 분들마다 입버릇처럼 뇌이시는 언어가 있지만 그분의 특징은 ‘부자가 될 놈’이었다. 착한 일을 하여도 부자가 될 놈이지만 무엇보다 남의 밭에 서리를 하다 들켜도, 못된 짓을 하다 들켜도 끝까지 쫓아가며 “부자가 될 놈 게 섰거라?”하며 호통을 치셨다는 것이다. 무족 건 끝까지 쫓아가는 순발력 또한 대단하셨는데 그 덕인지 ‘부자가 될 놈’ 그 소리 듣고 아들부자 살림부자로 살지 않는 놈 없더라는 것이다.

이렇듯 남들에게 전하는 말이라는 것이 우리의 환경도 갖추게 하고 정신력도 만드는 것 같다. 요즘처럼 자신의입엔 대지도 않을 수입 들여놓고 경재 살리겠다고 떠벌리는 말, 말들, 삶의 흙까지 빼앗기게 생긴 유전자 변형이 민심을 병들게 만들고 있는 판에 경재는 언제 살아날 것인지 걱정이 더해만 간다. 친구 아버지처럼 말씀 한마다 한마디에 정신력을 건네주심에 감사하고, 대한민국의 원천이 될 수 있는 말과 실천으로 보여주는 분들이 계시기에 우리의 땅에선 우리 것이 최고라는 긍지를 지니게 된다.

<가섭산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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