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취해 있는데 홀로 깨어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불의와 부정을 저지르고 있지만 혼자 깨끗한 삶을 산다는 뜻

전국시대 말기 초(楚)나라의 시인 굴원(屈原)은 정치가로서도 뛰어나 회왕(懷王)에게 중용되어 삼려대부(三閭大夫:소(昭)·굴(屈)·경(景)의 세 귀족 집안을 다스리던 벼슬)라는 고위 관직에까지 올랐다.

그러다 보니 중신(重臣)들의 시샘을 사게 되어 자주 모함을 받고 있던 중 회왕의 명령으로 새 법령(法令)의 초안(草案)을 잡고 있었다.

한창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데 당시 실력자 중의 한사람인 근상(勤常)이 찾아와 새 법령의 내용을 알려 달라고 사정했다.

그러나 법령의 중요성에 비추어 누구에게도 알려줄 수 없다면서 굴원은 근상의 요청을 거절했다.

이 사건에 대해 앙심(怏心)을 품은 근상은 굴원을 비방(誹謗)하고 다녔는데, 왕도 마침내 굴원을 의심해 멀리하다가 관직(官職)을 박탈(剝奪)해 버렸다.

조정에서 쫓겨난 굴원은 머리칼을 풀어 흐트러뜨린 채 장강(長江:양쯔강) 주변을 방황했다.

실의의 나날을 보낸 이때 굴원은 자신의 참담한 심경을 토로한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이소(離騷)’와 ‘어부사(漁夫辭)’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떠돌이 생활을 하는 동안 굴원의 몸은 고목처럼 마르고 얼굴은 초췌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를 알아본 어부(漁夫)가 있었다.

어부는 “아니,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아니십니까? 어쩌다가 이런 곳에까지 왔습니까?”

라고 물었고, 굴원은 “세상이 온통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두들 취하여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다가 이렇게 쫓겨나고 말았소(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 是以見放;거세개탁아독청, 중인개취아독성, 시이견방)”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어부는 “어째서 세상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르지 않고 홀로 고상(高尙)하게 살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굴원은 “머리를 새로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을 고쳐 쓰고, 몸을 새로 씻은 사람은 반드시 옷매무새를 단정히 한다고 들었소. 어찌 깨끗한 몸으로 더러운 것들을 받아들이겠소이까? 차라리 상강(湘江)에 뛰어들어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지낼지언정 어찌 결백한 몸에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겠소이까?”라고 대답하였다.

이 고사는 《초사(楚辭)》의 한 편인 〈어부사(漁夫辭)〉의 내용이며, 《사기(史記)》의 〈굴원·가생열전(屈原·賈生列傳)〉에도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중취독성은 불의(不義)와 부정(不正)이 만연(漫然)한 혼탁(混濁)한 세상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덕성(德性)을 지키려는 자세 또는 그러한 사람을 가리키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한자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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