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옥

시어머니의 손 등에 링거주사약이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진다.

“어머니, 저 왔어요. 좀 괜찮으세요?”

기척이 없다.

며칠 전, 시어머니는 이곳에 입원을 하셨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워 토하는 증상이 지속되었다.

병원에 온 지 이틀이 지났는데도 아직 어지럼증이 가시지 않는지 눈을 뜨지 못하신다.

시어머니는 어지럼증으로 인해 차를 타고 어디를 가 본적이 없으셨다.

그런 분이 칠십 평생을 살면서 처음으로 집을 떠나 병원에 입원하셨다.

입원실이 시끌시끌하다. 할아버지 한 분이 먹을거리를 여기저기에 나누면서 환자의 기분을 맞추려 한다.

아픔이 있는 입원실이건만 무슨 잔치 분위기 같다. 할아버지 한 분으로 인해 3층 입원실이 떠들썩하다. 하지만 유독 구석진 침대주인인 할머니는 아무 말이 없다.

갑자기 붕대를 감은 할머니가 며느리와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목소리가 커졌다. 무슨 환자가 저렇게 불만이 많을까?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하다.

보호자도 여자들뿐인 병실에 남정네가 왔으니 불편하다는 것이이다. 하지만 그 할아버지는 자기 부인을 간병하러 온 것인데 웬 말이 많으냐고 할 뿐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훤칠한 키에 바짝 마른 몸이 그냥 대충 보아도 수더분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얼굴은 술에 쩔어 피부색은 시커멓다. 할아버지의 딸이 어제 왔었는데 자기 아버지는 잔정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이럴 때 정 좀 생기라고 어머니를 아버지에게 맡겼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어쩜 그리 나의 아버지를 닮았는지 모르겠다.

키도 비슷하고 깡마른 체격도 흡사하다. 우리 아버지도 잔정이 없었다. 자식들에게는 엄하고 무뚝뚝하고 생활력 없는 아버지로 기억 속에 새겨져있다. 요즘 들어 어머니는 가끔 아버지 말씀을 종종 하시곤 한다.

아버지는 부지런하기로 소문났다고 했다. 농사를 지을 때는 첫 닭이 울기 전에 소여물을 끊여주고 그날 일 반을 식전에 다 해놓는 아버지였다고 한다.

추운겨울날 엄마가 일어나서 보니 어느새 안채부엌에서 군불을 지펴 물을 따뜻하게 데워 추운 아침을 따듯하게 보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던 아버지가 어느 햇살 따듯한 가을날에 갑자기 저혈압으로 쓰러지셨다.

병원으로 옮겨져 아무것도 모른 체 몇 날을 보내고는 정신을 놓고 집 아랫목에 누워있게 되었다.

눈만 뜨면 매일같이 큰소리로 싸우던 두 분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눈을 뜨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 자리에 있어만 달라고 아버지께 하는 말을 들었었다.

그때는 정말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살면서 미우니 고우니 해도 부부밖에 없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사흘째 되던 날 입원실로 갔다. 말을 전혀 하지 않았던 환자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남자보호자가 와서 불편하다고 잔소리를 늘어놓더니 이제는 제법 친해진 모양이다.

시끌벅적 환자와 보호자가 한마음이 된 것 같다. 음식을 나누면서 어느 보호자가 한마디 던진다.

“할아버지는 좋겠어요. 꽃 속에서 놀아서”

“꽃이면 뭐해요. 다 지는 꽃인걸”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서도 할머니를 바라보는 눈길이 그윽하기만 했다.

그런 할아버지가 내게는 ‘지는 꽃도 꽃이지, 암 좋지요 꽃 중에서도 우리 할멈 꽃이 제일 이지요’하며 말씀하시는 것만 같았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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