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을 다해 나라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

기원전 582년, 양(梁)나라의 선제(宣제)가 죽고, 그 아들 정제(靜帝)가 뒤를 계승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제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조정에서는 어린 황제의 후견인(後見人)을 세우는 일로 의견 대립이 일어났다.

유방(劉昉) 등 많은 신하들이 수(隋)나라의 양견(楊堅)을 재상으로 맞아들여 어린 황제의 후견인으로 하자고 주장했다.

그 당시 수나라는 군소 왕조 중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으며, 양견은 문제(文帝)를 칭하고 있었다.

기왕 기댈 바엔 큰 나무 밑이 안전하다는 것이 유방 등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안지의(顔之儀)등은 그건 나라를 파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 의견에 반대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조정의 은혜를 입어 왔으니, 지금이야말로 진충보국(盡忠報國)해야 할 때다.

타국 사람에게 국운을 맡기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이제 죽어서 나라에 보답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결국 양건이 재상으로 맞아들여지고 정제를 보좌하게 되고 급기야는 양을 무너뜨리고 수나라를 세우게 된다.

<해오름 학원장, 극동정보대 겸임교수 서범석의 한자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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